커리어 피드

시간을 사치하다

- Day 2 -

블랭크(Blank) / 19. 03. 29. 오후 10:18



note. 2-11

용산사에서 디화지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다, 그 곁의 Xin-fu 시장에 눈을 빼앗겼다. 시장을 구경하다 그 곁의 갤러리에 또 눈을 빼앗기고, 갤러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엔 그 곁의 카페에 또 다시 눈을 빼앗겨 차를 마시며 한참 노닐었다.

용산사에서 디화지에까지, 구글맵이 알려준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
그러나 그곳에 닿기까지 실제로 걸린 시간은 수어 배 이상이었다.
내키는 대로 시간을 펑펑 쓰며 낭비할 수 있는 것도, 여행에서나 부릴 법한 특별한 사치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특별한 이유는 늘 재고 따지며 아껴 쓰던 ‘시간’을 펑펑 낭비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빠듯한 회사 업무 일정 사이에 휴가를 내고 떠나온 여행. 정해진 휴가일에 맞추어 출국 편과 귀국 편을 선택했다. 나도 언젠가는 귀국 편을 정하지 않은 채 훌쩍 떠나곤 했지만,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지금에 와서 그만한 자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정말 ‘중대한 시간적 제약’을 가진 여행인 것이다.


그럼에도 계획 없이 이어지는 여행지에서의 매일은, 서울에서의 일상보다 분명 자유롭다. 그만큼 시간을 대하는 마음도 한껏 너그러워진다. 


마음먹은 시간이 훌쩍 넘겨 잠에서 깨도,
길을 잃고 헤매다 예상보다 늦게 목적지에 닿아도, 괜찮다.

배차가 드문 버스를 놓쳐 한참을 기다려도, 대체로 괜찮다.
영업 시간을 착각해 먼 길을 걸어 찾아간 가게 앞에서 허탈해져도, 결국엔 괜찮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니까.

나는 지금 여행자니까.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제약 중 시간만큼 절대적인 것이 또 있을까.


버겁다 호소해도, 시간은 기다려줄 기미 없이 늘 야속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큼은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주는 듯하다. 시간의 꽁무니를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의 손을 이끌며 걷는 기분. 시간은 그저 내 걸음을 따를 뿐이다. 나를 위해, 나에게 맞추어 존재한다는 듯이.


여행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역시, 

이 제약 없는 ‘시간 낭비’에서 기인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걱정 없이 시간을 펑펑 쓰고 낭비하는 해방감. 그렇게 시간을 사치하는 기쁨이 곧 여행의 기쁨이기도 한 것이다.

내일은 또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


수민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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