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울산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자동차 회사 임원을 맡고 계신 아버지의 뜻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역시 부모님의 권유로 경찰행정학과를 선택하였고,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회사에 취업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좀 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 때 처음 들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뭘까, 내가 남들보다 자신있는 분야는 뭘까 고민하던 차에, 아무 생각 없이 켠 페이스북을 훑어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옷을 좋아하고, 유행에 민감하고, 사람과 사귀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 뒤로는 쉬운 선택이었습니다. 예쁜 옷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추천해서 그 옷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며 뿌듯해했고, 시장에서 티 하나를 살 때도 갖고 있는 옷들과 비교해보며 머릿속으로 코디를 했었고, 옷장 가득 걸려있는 옷들을 보며 행복해하던 그 순간들이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의류와 판매를 키워드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동대문 의류매장의 판매직으로 일하며 고객의 체형과 분위기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줄 때, 그리고 고객이 옷을 입어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갑을 꺼냈을 때, 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과 행복이 찾아들었습니다. 즐겁게 내가 하고싶은 대로 일했을 뿐인데도 매장의 매출은 꾸준히 올랐고, 그러면서도 고객의 불편/불만에 응대하며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법 역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도매시장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MD직군으로 옮기게 되었고, 패션의 흐름을 고려한 상품의 가격 선정과 아이템 선별을 익히며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고, 매장별 매출이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판매직군에서 고객을 응대하며 쌓은 노하우를 MD직군에서도 활용하여 거래처 확장이나 관계 유지가 전에없이 원활해졌고, 상품의 특성과 특징을 더 넓은 시각에서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무직군으로 전환하며 패션상품의 기획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꾸준한 시장조사와 트렌드 파악, 물류시스템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길거리에 걸린 옷만 봐도 언제 출하되었을지, 어떤 루트로 유통된 옷일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패션/의류 업계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눈이 날카롭게 바뀌었습니다.

 나중에는 직접 매장 오픈을 담당하면서 상품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과 소비자층 분석을 통해 훌륭한 성과를 올렸고, 정말로 이 일이 나의 소질과 적성에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까지 남성 의류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일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여성 의류도 큰 흐름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성 의류를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도맡아 하는 업체로 옮기며, 직접 디자인 작업이나 생산 과정에 관여하게 되었고 완품되어 유통되는 과정을 주로 맡아 처리하였습니다. 또한 거래업체들과의 미팅을 통해 회사가 바라는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역할 역시 도맡았고, 중국 프로모션 관리를 하며 환율과 재고관리, 수수료 확인 등을 통해 결제 파트와 엑셀 등 사무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까지 익힐 수 있었습니다.

 패션에 대한 열정과 흥미로 시작한 저의 커리어와 역량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언제 어디에서 일하든 항상 KPI를 목표 이상으로 달성해왔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잘 몰랐던 분야에서 일하게 되면서도 항상 남들보다 배이상 노력하고 공부하여 실적을 올렸고, '일 하나는 확실하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뻤습니다.

 비록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거나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저처럼 소매에서 도매, 사무, 물류, 결제까지 '패션'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렇게나 다양한 경험을 이처럼 밀도높게 한 사람은 드물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열정과 근성으로 쌓아온 저의 경험을 모두 쏟아낼 수 있는, 그런 기업과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머리는 지금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