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한 달 동안 원격근무하기(2)

(2)실제 생활

슬로워크(Slowalk)

발리 생활, 어떤 것이 필요한가

한 달 동안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원격근무를 한 곳 중 발리의 우붓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낮은 건물들과 넓게 펼쳐진 논밭. 꽤 번화하다고 하지만 2차선이 전부인 도로. 한국과 비교하면 불편한 것이 많은데도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 따뜻한 날씨와 눈을 돌리면 언제나 푸른 자연이 곁에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발리, 그중에서 우붓 생활을 하려면 실제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살펴보려 합니다.

항공권


발리 원격근무를 가기 전 제가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항공권입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항공권은 예약하는 시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요. 발리는 1~3월이 우기라 가격이 조금 저렴한 편입니다. 건기와 비교했을 때 바다도 깨끗하지 않고,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합니다. 여행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날씨죠. 그래서 보다 저렴한 티켓을 구하려면 우기를 노리는 것도 추천합니다. 사람도 적고 티켓도, 물가도 적당합니다.


일반적으로 떠나기 한 두 달 전에 예약하면 적당한 가격에 표를 구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항공사에서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나라를 경유해 발리로 떠나는 표를 판매하는데요. 한 번에 여러 나라를 다녀오는 방법으로 스탑오버가 가능한 표를 구매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숙소

발리의 큰 매력 중 하나로 저렴한 물가를 들 수 있습니다. 현지식은 2,000원 정도부터 시작하고 과일주스는 1,000원에서 2,000원 정도. 꾸따보단 우붓이, 우붓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으로 갈수록 가격이 비싸집니다. 숙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룻밤 6,000원에 아침까지 주는 도미토리부터 숲속에 있는 방갈로까지 종류도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1. 도미토리

하루 6,000원 정도인 도미토리. 아침도 줍니다.



우붓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미토리의 식당. 초반엔 이곳에서 대부분의 업무를 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메뉴도 5가지 정도가 있는데다, 종업원도 친절해 떠나기 싫었던 숙소


도미토리의 장점은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혼자 원격근무를 떠난 일정이 길어서 같이 밥을 먹거나 여행을 다닐 친구를 구하는데는 도미토리만한 만남의 장소가 없습니다! 게다가 숙소 가격도 저렴하고 현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정착하기 전 잠시 머무를 곳으로 추천합니다. 단 대부분 배낭여행자라 일주일에 몇 번씩 옆 침대 친구가 새로 나타나고 사라져 매번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2. 호텔

하룻밤 묵었던 호텔. 가격만큼 낮은 퀄리티입니다.


발리는 호텔도 저렴합니다. 하지만 저렴하면 그만큼 시설이 좋지 않은데요. 가격을 움직이는 가장 큰 조건은 바로 에어컨의 유무입니다. 우기라도 에어컨이 필요한 날씨가 이어지기에 더위를 많이 타는 분이라면 꼭 에어컨이 있는 방을 구하길 추천합니다.


에어컨만큼 필수적인 수영장! 발리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숙소입니다. 풀숲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곳이 제가 혼자 쓴 건물입니다. (물론 에어컨은 없었습니다)


도미토리와 비교하면 훨씬 양도 많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조식! 아침을 먹고 일을 하다 수영을 하는 기분이란.. 이 모든것이 하룻 밤 1만 5천 원 정도!

에어컨이 없는 방은 1만 원 정도부터 시작하고 에어컨이 있는 방은 2–3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두 배 차이가 나지만 다른 나라 숙소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저렴합니다(물론, 하룻밤에 백만 원 넘는 숙소도 있습니다).

3. 장기렌트

제가 목표로 했던 숙소가 바로 장기렌트입니다. 전 방 구하는 시기를 놓쳐 결국 도미토리와 호텔을 오가는 생활을 했는데요. 다시 발리를 간다면 가장 먼저 장기렌트부터 할 겁니다! 장기렌트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제가 주로 지냈던 우붓에서는 페이스북 그룹 [Ubud, Bali — Housing & Rental]에서 장기 렌트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습니다. 전 소심했기 때문에 그룹에 올라온 정보를 탐색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위치, 예산 등 정보를 그룹 게시판에 올리면 해당 매물(?)을 가진 사람들이 연락해옵니다. 한 달에 40–50만 원 정도면 에어컨 + 수영장이 있는 집을 구할 수 있습니다.

USIM

해외 원격근무의 핵심은 인터넷(!)입니다. 대부분 숙소에서 WIFI를 쓸 수 있지만, 한국처럼 빠르지 않습니다. 이럴 땐 휴대폰 테더링을 추천합니다.

1. 공항

가격도 저렴하고 속도도 빠른 발리의 USIM! 어디서 어떻게 구매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먼저 공항을 살펴보겠습니다. 공항에서 USIM 파는 사람들은 출구를 나가자 마자 찾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 없이 낯선 땅을 나서는 것이 조금 불편하겠지만 일단 패스…하고 시내에서 구매하시길 추천합니다. 공항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가격의 두 배 정도를 받기 때문입니다(그렇게 뻥튀기한 가격도 한국보다는 저렴합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인터넷이 필요하다!” 하는 분들은 공항에서 구매하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시내에 나가면 또 다른 바가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2. 시내

시내의 다양한 곳에서 USIM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호기롭게 공항을 패스하고 시내에 나와 번듯해 보이는 곳에서 첫 바가지를 당했습니다. 데이터만 되는 3G USIM 2GB를 Rp 200,000 한화로 1만 7천 원에 구매한것이지요. 예전엔 한국도 3G도 빠르다며 기쁘게 사용했지만 4G에 익숙해진 문명인에겐 3G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차라리 내가 인터넷을 안 쓰고 말지…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성격 테스트랄까요?

3G가 가장 답답했을 때는 해변에 있다가 당장 파일을 보내야 하는데 인터넷이 아예 안 잡히던 순간입니다. 옆에 앉아있는 현지 비치 보이(서핑을 가르쳐주는 현지인을 “비치 보이”라고 부릅니다)들은 youtube로 영상도 보는데 왜 나는! 이런 제가 절박해 보였는지 이후 한 비치 보이의 도움을 받아 USIM을 새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소개받은 가게에선 4G, 12GB를 Rp 250,000 정도로 구매했습니다. 12GB! 한 달 내내 작업하는데 문제없는 인터넷 양과 속도! 이렇게 돈을 써가며 현지 물가를 체험하는 건 저만 겪을 테니 여러분은 꽃길만 걸으세요!

TIP

4G(3G는 사용하기 어려운 속도입니다) 4GB 데이터 기준으로 Rp 100,000 안팎이면 적당히 바가지 없이 구매한 가격이니 적당히 흥정하시면 됩니다. 혹시 현지인들과 전화통화 할 일이 있으시다면(비치 보이에게 서핑을 배운다거나…) 데이터+전화가 가능한 USIM를 사면 더 좋습니다!

교통수단

발리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오토바이, 택시가 발달했습니다. 저는 저를 믿지 못해 모두가 빌리는 오토바이는 그냥 패스하고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봤습니다.

1. 길거리 오토바이


그냥 걷기만 해도 수많은 현지인이 숨쉬듯 내뱉은 말이 “헬로~ 뜨랜스포트? 모또바이크?”입니다. 처음엔 ‘뭐야….무섭게’ 했는데 나중엔 저도 급해지니 이들과도 가격흥정을 하고 오토바이에 [아저씨-제 키 반만 한 캐리어-저] 이렇게 셋이 아슬아슬하게 이동하기도 하다 보니 대강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대강 협상해서 10분 거리 기준 Rp 20–50,000 정도 안에서 목적지를 협상하고 이동합니다. 오토바이 이동은 10~30분 이내의 거리만 추천합니다.

2. 택시

Pic credit: IndonesianIndustry.com


발리에선 우버를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엄청 늦게 오거나 현지 택시기사들한테 엄청난 제지를 당하기 때문에 우버를 부를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점입니다. 대신 발리에선 Blue Bird라는 택시회사가 그나마 미터기대로 운행해준다고 유명한 회사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가짜 Blue Bird 표시를 하고 운전을 하지요.

공항-꾸따시내 실제 거리는 10분 정도이고 가격은 50,000–70,000입니다. 하지만, 아시잖아요. 저희 지금 발리에요…. 처음에 발리에 갔을 때는 일부러 출발 층으로 올라가 방금 손님이 내린 “Blue Bird”택시를 타서 꾸따 시내까지 Rp 60,000를 냈습니다. “나는 현명한 여행자~” 혼자 뿌듯해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태국여행을 갔다 다시 발리에 왔을 땐 내리자마자 일부러! 공항에서 운영하는 “Blue Bird” 택시를 찾아가 탔습니다. 평소에 “Blue Bird”는 믿을 수 있어! 라는 신념이 낯선 땅에서 저를 보호해줬습니다. 가격은 Rp 150,000… Blue Bird도 믿을게 못 되는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크고 친절한 택시였습니다….

TIP

공항-우붓간 택시는 Rp 300,000~350,000이고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낮에 혼자 우붓까지 저렴하게 가는 팁은 꾸따 시내에 있는 Perama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시간에 맞춰 여행사에 가면 꾸따에서 우붓까지 Rp 60,000에 갈 수 있습니다

코워킹스페이스

1. Hubud


제가 머물렀던 코워킹스페이스는 우붓의 Hubud 입니다. Hubud를 광고해주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발리 물가에 비하면 비싼 이용가격과 에어컨이 없는! 치명적 단점 때문이죠.

매주 새로운 디지털노마드를 맞이하는 new member orientation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네트워킹과 자체 프로그램으로 다른 코워킹스페이스와 차별점을 두고 현재 치앙마이에도 코워킹스페이스를 준비하는 등 동남아 쪽에서 몸집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본인이 서비스를 준비 중이거나 서비스가 출시 임박이신 분은 Hubud의 네트워킹이 도움 될 것 같습니다.

큰 선풍기 2대를 나눠쓰는 hubud 2층


위에도 말했듯이 Hubud의 가장 큰 단점은 더위입니다. 그래도 1층은 조금 시원한 편인지만 너도나도 현지와 전화 중이라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2층은 조용하지요. 하지만 바로 천장이라 1층과 비교하면 덥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안 올라오죠 ㅎㅎ. 바로 논밭이 내다보이는 테라스는 시원하고 나름 조용합니다! 멋집니다! 개미를 조심하세요!

2. Outpost


우붓엔 또 다른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는데요 바로 Outpost입니다. 몽키포레스트를 지나 한참 걸어다가 보면 몇몇 건물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입니다.

Hubud이 대나무로 만들어져 아늑하다면, Outpost는 하얗고 좀 더 탁 트여있습니다.


나름 번화가에 있는 Hubud보다 외곽에 있지만 그만큼 장점도 있습니다. 바로 1층은 에어컨이 있고,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에어컨! 수영장!! 단, 에어컨이 있는 1층은 집중 업무구역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회의를 하거나 수다를 떠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회의가 있다면 2층에 올라가서 하시면 됩니다.

이밖에도 몇몇 코워킹스페이스가 있는데요, 전부 가보진 못했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니 방문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단, 코워킹스페이스가 그렇게 저렴하진 않습니다. 대부분 한 달 사용 가능한 멤버십을 제공하지만 Hubud의 경우 기본 멤버쉽이 30시간에 60달러, Outpost는 25시간에 45달러로 인터넷에 로그인 한 시간을 카운트해서 계산한다고 해도 비싼 편입니다. 하루 이용권도 15달러 정도라 카페 이용이 더 저렴합니다.

역시 일하기엔 카페가 최고죠!


제가 원격근무를 했던 1월, 저희 팀의 다른 분들도 원격근무를 유독 많이 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발리 원격근무 이후에 제가 없어서 불편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모두 “딱히… 별로…” “좀 조용하긴 했죠”라는 반응뿐 다른 부정적인 피드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팀원이 원격근무를 즐겨 하고 있어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엔 더 나은 원격회의를 위해 새로 장비도 구매하고, 다양한 업무를 논의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공간의 한계를 넘어 회의를 잘할 수 있을지 팀원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발리에서 일을 하니 일의 효율이 더 좋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녁에 친구들과 어울려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기 위해 낮에 집중해서 일했으니 한국보다 업무 효율이 좋았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장소를 바꾼다고 업무 효율이 좋아진다면 매번 이사 다니는 학생이 성적이 제일 높아야 하지 않을까요? 원격근무는 업무 효율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또 하나의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것과 멀어져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 사람, 언어, 음식, 음악, 목소리, 온도, 냄새, 습도, 빛과 함께 40일 가까이 생활했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여행을 해왔지만 이제야 사람들이 왜 여행을 떠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익숙함에서 멀어져 새로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 새로운 것을 겪고 낭만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시간. 단순한 여행을 넘어 원격근무는 다른 곳에서 저의 삶과 일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여행을 한 달 동안 쉬지 않았다면 쉬이 지치거나 질렸을 여행지에서 낮엔 이방인인 듯 현지인인 듯 일을 하고, 밤에는 하루하루 익숙해져 가는 거리를 걷거나 낯선 냄새와 함께 잠드는 나날은 원격근무가 아니면 못 누릴 사치입니다.


모두가 할 수 없지만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원격근무. 다음은 또 어디로 떠날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날 예정입니다. 어디선가 스티비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랩탑 앞에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본다면, 그건 원격근무 중인 스티비팀 멤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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