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인터넷 이전의 인터넷, 미니텔

바벨탑(Babeltop) / 조은별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전문 한불 번역사로 활동하던 저는 스타트업 계에 막 발을 들인 초보 창업자가 되었습니다. 빠른 리듬으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선배 창업가들과 이 분야 전문가들의 아티클을 큐레이션 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곤 하죠. 한불 번역사인 저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된 창업 정보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쪽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떤지, 그쪽의 창업자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점에 주목하는지 점점 호기심을 넓혀가게 되었습니다. 혼자만 접하기에는 아쉬운 글들을 우리나라의 열정적인 창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번역 재능을 발휘해봅니다.

미니텔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PC가 보급되기 전인 1980년대 초반, 당시 프랑스 우정 통신국이 전화와 정보기술을 결합, 문자 기반의 통신서비스 단말기로 개발한 것입니다. 다가올 정보화 시대를 예견한 프랑스 정부가 자국민들로 하여금 정보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한 국책 사업이었던 것이죠.

`작은 프랑스 상자(Little French Box)’라는 애칭이 붙은 베이지색의 토스트기 만한 이 기기는 9인치의 흑백 스크린과 키보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미니텔로 인해 프랑스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단말기 제조를 맡은 기업들과 콘텐츠 기업들은 활기를 띠었었다고 합니다. 1995년 프랑스의 국영 통신업체 프랑스 텔레콤(현재 오렌지)은 미니텔로 10억 유로의 매출을 올렸으며이중 30%의 수수료를 제외하고는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1980년대 미니텔 성인 전용 서비스를 일컷는 ‘미니텔 로즈(Minitel Rose)’의 광고


1981년 공개되어 프랑스의 각 가정에 무료로 보급된 이 기기는 처음에 `전자 전화번호부‘ 정도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그러다 점차 다양한 ‘앱’이 나오며 열차 예약공연 예약날씨 확인 등 생활에 밀접하게 활용되었습니다비디오게임에서부터 성인 채팅까지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미니텔과 관련한 일화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인터넷 세대인 저의 프랑스 친구들도 어릴 때 언니나 오빠가 프랑스의 수능인 바깔로레아 성적을 미니텔을 통해 확인하던 것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미니텔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 중반에는 프랑스 전역에 약 900만 대의 기기가 보급된 가운데 2천500만 명이 총 2만 3천여 개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합니다프랑스 농촌지역에까지 널리 보급된 이 단순한 단말기 덕분에 프랑스 국민들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정보통신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죠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한 석상에서 파리 근교 소도시인 오베르빌리에에 사는 빵집 주인은 미니텔을 통해 은행 계좌를 확인할 수 있다고 자랑하면서 “뉴욕의 빵집 주인도 그럴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인터넷의 보급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도 PC의 보급과 인터넷 공급망이 미흡했던 이유로 미니텔의 인기는 건재했었습니다무엇보다 프랑스인들 특유의 애국심과 자부심도 미니텔의 인기 유지에 한몫했다고 합니다하지만 곧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니텔의 열기는 점점 식어갔다고 합니다메모리의 한계와 속도의 문제로 더 이상 오래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죠점점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며 프랑스 사람들은 새로운 트렌드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1997년 당시 프랑스 총리 리오넬 조스팽은 “국내에만 한정된 망인 미니텔은 프랑스의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미니텔은 결국 2012년에 프랑스인들의 추억으로 영영 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많은 창업자들이 미니텔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현재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거물급 인사들을 배출한 첫 번째 장이었던 것이죠대표적으로 프리Free의 창립자 그자비에 니엘Xavier Niel의 경우가 그렇습니다그는 미니텔을 이용한 성인 전용 서비스를 지칭하는 미니텔 로즈에 특화된 기업 일리아드Iliad로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일리아드는 여전히 프리의 모회사이기도 하죠프랑스의 최고 부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틱Meetic의 창업자 마크 시몬치니MarcSimoncini 역시 미니텔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그는 나중에 프랑스 내 숙박 서비스 아이프랑스iFrance와 데이트 서비스 미틱을 창업하게 됩니다.

미니텔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와 비슷한 점이 많아 정말 놀랐습니다. 80년대부터 프랑스 국민들이 정보통신서비스를 누려왔다는 사실도 참 신기했습니다미니텔은 인터넷의 대중화 이전에 존재하던 진정한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

http://www.journaldugeek.com/2012/06/30/minitel-36-15-ulla/

http://leplus.nouvelobs.com/contribution/569421-fin-du-minitel-chronique-d-une-inexorable-disparition.html

http://lexpansion.lexpress.fr/high-tech/10-chiffres-qui-font-l-histoire-du-minitel_1324860.html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로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