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그로잉맘 이다랑 대표

그로잉맘

-안녕하세요. 대표님과 그로잉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부모들을 위한 잡학 회사예요. 부모와 관련된 일은 다 하는 회사인 거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지금 진행 중인 그로잉박스같은 온라인 상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업을 하려고 했었어요. 온라인 상담 프로그램으로 육아정보나 상담 전문 서비스에 대한 불평등을 해결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온라인 상담 프로그램을 하기에는 검증된 게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았어요. 투자자들도 그렇게 말했고요. 그래서 오프라인 사업을 먼저 시작했어요.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부모님들을 직접 만나고, 그렇게 데이터를 모아서 온라인 사업을 함께 준비했죠. 그런데 엄마 아빠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영유아의 부모님들이 너무 소외받은 집단이라는 걸 느꼈어요. 사실 ‘영유아의 부모’로 산다는 게 특별한 소수만 겪는 일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한두 번씩은 겪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이 시기가 ‘바닥에 떨어진 암흑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들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이것저것 시작하게 되었어요. 신년회나 바자회, 음악회 같은 것들을요. 그러다 보니 부모를 위한 잡학 회사가 되었네요. 

-대표님과 그로잉맘 팀원분들을 뵐 때마다 정말 바쁘신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계시군요.

그러네요. 이렇게 다양하게 하다 보면 '너무 이것저것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면서 걱정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하나의 솔루션, 하나의 상품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솔루션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희는 문화, 환경, 교육 등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다 건드려보기로 했어요. 팀원끼리는 이미 합의를 했죠. 이젠 어쩔 수 없다. 다 열심히 해보자. 이렇게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그로잉맘의 시작점을 알고 싶어요. 어떤 계기로 그로잉맘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에게 큰 계기이자 전환점이 된 것은 에티오피아에서의 경험이었어요. 결혼하고 거의 바로 에티오피아로 떠났거든요.

-에티오피아요? 어떻게 에티오피아에 가실 생각을 하셨어요?

이건 좀 개인적인 얘기지만, 사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생일대의 쇼핑'을 해야 하는 것에 회의가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쇼핑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게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우연히 한 NGO가 KOICA사업으로 에티오피아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PM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남편과 함께 지원했어요. 저희는 결혼 준비랑 아프리카로 떠날 준비를 같이한 거죠.

-그때 PM을 맡으셨던 사업이 그로잉맘의 계기이자 전환점이 되었던 건가요?

네, 맞아요. 에티오피아의 한 지역 사회를 활성화하는 사업이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교육 분야를 담당했었어요. 교사들을 모아서 교사 교육을 하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문맹퇴치 교육, 부모교육, 미술치료도 했어요. 특히 엄마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어요. 저희 사업팀이 떠난 후에도 엄마들 스스로 성장하고 교류하실 수 있도록 해야 했거든요. 다행히 저희가 떠날 즈음 엄마들이 스스로 ‘엄마 자치단체’ 같은 걸 만드셨어요. 생각해보면 이미 그때 저는 체인지메이커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엄마들과 이다랑 대표

-에티오피아 엄마들의 변화를 보고 한국에서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되신 건가요?

바로 '엄마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한국에 와서 한동안은 청소년 상담사로 일 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아이를 가졌고, 일을 그만둬야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너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주변을 돌아봐도 엄마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때 에티오피아의 엄마들이 생각났죠. 거기서는 다 배고프고, 문맹이고, 신발도 없고 그랬는데 다들 행복해했거든요. 만약 에티오피아에 다녀오지 않았으면, 한국에서 아이 엄마로서의 불행한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엄마들과 비교하게 되니까, ‘다 이런 거지 뭐’ 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한국의 아이 엄마로서의 고통이 제 마음에 큰 메시지로 남았고, 계속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아이를 봐야 해서 밖에 나갈 수 없으니까, 그런 감정을 블로그에 글로 쓰기 시작한 거죠. 그게 그로잉맘의 시작이었어요.

-블로그로 시작한 그로잉맘이 이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소셜 벤처가 되었군요. 그 과정에서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헤이그라운드 스카이라운지에서 했던 음악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실 그 음악회는 즉흥적으로 한 행사였어요. 성동구 엄마들을 대상으로 ‘함께 육아’라는 프로그램을 8주 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 프로그램을 마칠 즈음 엄마들께서 ‘책거리를 하고 싶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예정에 없던 책거리여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음악회를 하기로 했어요. ‘함께 육아’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게 된 공연예술팀을 초대하고, 헤이그라운드 스카이라운지를 빌렸죠. 즉흥적으로 한 음악회였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어요. 엄마들이 아이는 물론이고 아빠들도 데리고 오시더라고요. 엄마를 위한 음악회가 가족을 위한 음악회가 된 거죠. 다행인 건 가족 모두가 행복해하셨어요. 사실 요즘 사회가 전체적으로 ‘개는 되는데 애는 안 되는 분위기’잖아요. 아이들 식당에 데려가기도 어렵고, 영화관이나 음악회는 더 그렇죠. 아이 부모님들이 그런데서 박탈감을 많이 느끼시거든요. 그런데 이 음악회에서는 아무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면서 웃고 있고, 아빠들은 맥주 한잔씩 하시면서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셨어요. 엄마들은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셨고요.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아이와 부모님 모두가 행복한 그로잉맘 음악회

-저도 그 음악회 자리에 잠시 있었는데요, 부모님들께서 정말 좋아하시는 걸 저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어요.

네, 실제로 정말 좋았다고 많이 말씀해주셨어요. 엄마들은 ‘꿈꾸는 것 같았다’고 말씀해주실 정도였고요. 아빠들도 저희를 많이 칭찬해주셨어요. '우리 아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처음 봤다'라고 하시면서, '감동이었고, 이런 것들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죠.

-이렇게 뿌듯한 일도 많으셨지만, 한 편으로는 힘든 일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로잉맘을 하면서 어떤 일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일을 하면서 만나는 외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어요. 육아하는 엄마가 창업한다는 것 자체가 우선 낯선 거죠. 투자자들, 파트너들에게 '육아를 하고 있지만 절대로 회사에 소홀하지 않는다. 시간 분배를 제대로 하고 있다.'라면서 설득해야 했어요. 창업 초기에는 '아이랑 일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뭘 선택하실 거예요?' 이런 질문도 받아봤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저는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시작한 편이에요. 처음 창업을 시작한 게 구글 캠퍼스였고, 지금 있는 헤이그라운드는 키즈 프랜들리 한 곳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할 수도 있잖아요. 저보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창업하시는 여성분들은 정말 힘드실 거예요.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큰 건 보람이었어요. 저희는 부모님들이 더 좋은 부모가 되도록 돕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한 부모가 되도록 돕고 있어요. 그로잉맘에서 함께한 엄마 아빠들이 갈수록 더 자신감을 갖고, 더 행복해하시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 '그래, 조금만 더 해보자!'하면서 힘들어도 계속 버티는 거죠. 보람도 중독이에요.(웃음)

-정말 위험한 중독이네요. 힘들어도 계속하게 하는.

네, 또 다른 원동력도 있어요. 지금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이 모두 엄마인데요, 선생님들께서 일하시면서 정말 행복해하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 어떻게든 버텨서 더 많은 엄마들을 고용하자!' 이런 목표를 세우고 버티고 있어요.

-그로잉맘의 사업을 통해서 어떤 세상을 꿈꾸시나요?

저희의 마지막 목표지점은 '집단 모성'이에요. 모성이라는 게 엄마에게만 한정된 마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 모성이 모여서 ‘나와 내 아이’ 외에도 다른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꿈꿔요.

부모는 다른 존재를 돌볼 수 있는 잠재력이 더 큰 사람들이에요. 제가 아이를 낳고 나서 알았어요. 제 아이를 낳고 나니까, 다른 아이들도 더 예뻐 보이더라고요. 출산전부터 남편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봉사나 일들을 종종 해왔는데, 그때도 아이들은 예쁘고 사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제가 엄마가 되고 나니까 그 아이들도 내 아이처럼 느껴지고 더 마음이 아프고 더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싶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런 마음을 가진 건 저뿐만이 아니었어요. 그로잉맘 법인이 세워지기 전에, 엄마들이 커피값을 아껴서 한 달에 한 번씩 저한테 보내주시면, 제가 그 돈을 모아서 베이비박스에 기저귀를 보내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엄마 50명이 함께하셨는데, 1년을 꾸준히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그로잉맘이 회사도 아니었고 그냥 블로거였을 뿐인데도요. 엄마들이 자기 아이가 있으니까, 기저귀가 부족한 게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 일인지 더 잘 알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내 아이’에만 한정된 마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얼마든지 흘러갈 수 있는 마음이라는 걸 확신했어요.

*그로잉맘에서 함께 마음을 키워가고 있는 부모님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자기 마음이 다 채워지고 건강해진 후에야 비로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잖아요. 부모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불행하고, 힘들면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없죠. 그래서 저희는 부모님들이 행복해지고, 마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말 그대로 'Growing 맘(마음)'이죠. 부모님의 마음이 성장하면, 그 마음이 자기의 아이에게만 머물지 않고, 세상의 다른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향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부모님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더 건강한 마음을 갖고 성장하겠죠. 그러면 그 자녀들의 세대부터는 사회가 더 따뜻하게 바뀌어가지 않을까, 이런 빅 픽쳐를 그려보는 거죠. 당장 전국의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고요, 우선 성동구 부모님들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바쁜 와중에도 이런 걸 잊지 않으려고 저희끼리 자주 얘기해요. 그로잉맘은 더 작아지고, 부모님들의 마음이 더 성장하도록 열심히 하자. 이렇게요.

-대표님이 정의하시는 체인지메이커는 무엇인가요?

체인지메이커를 특별한 존재로 정의해두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 삶에 주어진 일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체인지메이커라고 생각해서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언제나 체인지메이커였어요.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던 때도, 엄마로서 육아를 할 때도요. 제가 키운 아이가 크면, 제 아이가 살아갈 세상도 제 아이를 통해 변화되겠죠. 그것도 또 하나의 체인지메이킹이잖아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세상에 영향을 주게 되어있거든요. 그 사람의 관심 분야가 어떤 것이냐, 잠재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체인지메이커는 누구나 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열정적으로 회의를 하는 그로잉맘 팀원들

-대표님에게 헤이그라운드는 어떤 공간인가요?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에게 ‘내 방’ 같은 공간이에요. 내 방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다 하잖아요. 코를 파기도 하고, 방귀를 뀔 수도 있죠.(웃음)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에게 그런 공간이에요. 뭐든 해보고 싶은 건 눈치 안 보고 다 해볼 수 있는 곳. 저희가 저번에 프로그램하면서 헤이그라운드로 엄마들을 40명씩, 100명씩 불렀었는데요. 그 많은 엄마들이 왔다 갔다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으셨어요. 다른 데서는 그럴 수 없거든요. 또 뭔가 새로운 걸 해보려고 할 때마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우선 내질러요. 즉흥적으로, 전투적으로. 헤이그라운드는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체인지메이커들이 ‘내 방’처럼 쓸 수 있는 곳이니까 무궁무진하게 변할 수 있는, 잠재력 넘치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로잉맘 #경단녀 #경력단절여성 #엄마도경력이다 #일하는엄마 #기업문화 #스타트업CEO #여성복지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로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