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STP 전략을 그리고 있는 당신에게

김대리의 헛발질 시리즈

스팀헌트 (STEEMHUNT) / 조영휘


(이전 글을 읽었다면 알다시피) 김대리는 규모가 제법 있는 화장품 회사의 마케터로 일하다가 얼마전 큰 꿈을 품고 화장품 커머스를 하는 초기 스타트업에 조인했다. 김대리의 역할은 회사의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연간 상품전략, 캠페인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다. 이전에 인스타그램에서 헛발질하던 실수를 만회하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STP (Segmentation 시장세분화 -> Targeting 타겟팅 -> Positioning 포지셔닝)과 4P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로 연결되는 방대한 분량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서 사람들 앞에서 멋드러지게 발표했다. 그런데 무려 한시간이나 열변을 토한 발표가 끝나고 사람들의 우렁찬 박수를 기대한 김대리는 다음과 같은 의외의 반응에 놀라 자빠지고 만다.


그래서 도대체 우리가 지금 당장 뭘 해야 한다는거요?


야-내가 한시간동안 열변을 토하면서 니들이 뭘 해야 하는지 말해줬잖아!!라는 말을 꾹 참으며, 이번 글에서는 김대리처럼 학교에서 (또는 어디 마케팅 서적에서) 어설프게 배운 STP&4P를 가져와서 스타트업 마케팅 전략 수립에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헛발질 케이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 이 글에서 '김대리'는 그냥 일반명사 김대리지 실제 김대들을 지칭하는게 절대로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1. 니즈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시장세분화를 하고 있는 김대리


사실 STP&4P는 마케팅 전략 모델링의 가장 중요한 개념중 하나이다. 이게 제법 오래된 모델이기도 해서 요즘 STP얘기 꺼내면 이바닥에서 구닥다리 취급 받거나 갓 대학 졸업한 사람이 마케팅원론 교과서 보고 짓껄이는 내용으로 치부하곤 하는데, 사실 그 개념을 좀 더 파보면 이게 얼마나 심오한 영역의 모델이였는지 금방 느끼게 된다.


STP는 내 기억으론 1960년대 이후에 태동한 마케팅 모델로 알고 있다. 그 전 까지만 해도 마케팅이라면 주로 'Product Differentiation,' 즉 제품 차별화가 주를 이루던 시대였다. 대량생산과 경제대공황의 후폭풍이 지난 근현대 시장상황에서 발에 치일정도로 수 없이 많은 제품들 중 우리 제품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것이 마케터들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이였고, 따라서 대부분의 마케팅 전략들은 내 제품이 경쟁제품보다 어떤점들이 뛰어다나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인지시키기위한 활동들이 주를 이루었다.


60년대 이전의 마케팅은 대부분 'Product Differentiation'이 주를 이루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마케팅 모델의 축을 제품 -> 소비자로 옮겨서 생각하기 시작한게 바로 STP 모델이다. 즉, 제품을 타 제품들보다 더 우월하게 (또는 더 싸게) 만들어서 마케팅하자는 전략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먼저 탐색해 보고 특정 니즈를 포커스한 제품을 개발해서 그들에게 타겟팅하자는 전략으로 이동한게 바로 STP 모델링의 근본 원리인 것이다. 지금 스타트업 관련 컨텐츠에 보면 지겹게 들리는 '소비자가 겪고 있는 문제에 집중하세요'도 사실 STP 모델의 아다르고 어다른 표현법이기도 하다.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아무튼 STP의 가장 근본이 되는 Segmentation, 즉 시장세분화는 소비자의 드러난 (또는 잠재된) 니즈를 기반으로 시장을 나누고, 공통된 니즈를 가진 한개의 소비자 군을 타겟하기 위한 시장 구분을 의미한다. 보통 소비자의 니즈가 명확하게 드러나있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이걸 인구통계, 라이프사이클, 라이프스타일 등의 다양한 툴로 쪼개보는 것 뿐이지 시장세분화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니즈를 갖고 있는 시장들을 명확하게 구분해 내는것'에 있다.


이런 시장세분화를 수 많은 김대리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


+ 10대, 20대, 30대, 40대 ...
+ 저가, 중저가, 중고가, 고가 ...
+ 대학생, 직장인, 가정주부 ...
+ 스킨케어, 색조, 기능성 ...


김대리들의 가장 흔한 헛발질이 바로 시장을 저렇게 인구통계나 제품군으로 먼저 제 멋대로 쪼개놓은 후에 그 안에서 니즈를 찾고 앉아있는거다. 시장을 인구통계로 나누는건 어디까지나 특정니즈를 가진 소비자군을 판별해 내기 위해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툴이지 시장세분화 그 자체가 아닌데 이걸 시장세분화라고 하고 있으니 첫 단추를 잘못끼워서 뒤의 타겟팅, 포지셔닝, 4P까지 줄줄이 무너지는 전략을 짜고 있었던 거라 할 수 있다.


제대로된 시장세분화를 하려면 우선 시장 전체를 특정 니즈를 기반으로 나눌 수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예를들면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시장을 바라보는거다.


+ 화장품 사용을 통해 바라는 benefit이 서로 다른가? (피부유지, 피부개선, 특정 기능 향상...)
+ 제품 구매 경로에 따라 시장이 구분되는가? (온라인, 오프라인, 로드샵, 섭스크립션...)
+ 화장품을 주로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구분 가능한가? (집, 회사, 아웃도어...)
+ 직업에 따른 사용 상황에 따라 화장품에 기대하는 바가 서로 다른가? (실내에만 있는 사무직, 밖에 많이 돌아다니는 영업직, 자영업...)



저렇게 공통된 니즈를 공유하는, 그리고 서로 다른 집단으로 구분 가능한 잣대로 시장을 나눠본 후에 각 시장이 특정 인구통계적 분류로 타겟팅이 가능한지를 파악해 보는게 시장세분화의 핵심이다.



2.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타겟팅을 주장하는 김대리


이것도 생각보다 많은 김대리들이 헛발질 하는 케이스인데, 김대리가 타겟하자고 주장하는 타겟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접근 가능한지 설명 자체가 불가능한 타겟팅인 경우이다. 예를 들어보자. 다음과 같은 표현법은 실제로 마케팅 부서 기획서들에서 발에 치일정도로 많이 보이는 타겟군 묘사법이다.


+ 30-50대, 스포츠를 좋아하는 직장인 남자
+ 20대,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대학생 여자
+ 20대 초반, 패션에 관심 많은 대학생
+ 50-60대, 은퇴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시니어


위의 타겟설정이 가지는 문제점은 물론 정교하지 못하고 타겟 크기가 너무 브로드하다는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묘사한 타겟 자체가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20대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직장인 여자를 예를들어 보자. 우선 20대 직장인 여자는 통계청 들어가면 금방 모수가 나오는 타겟이다. 그런데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사람은 어떻게 발라낼 수 있을까? 설문조사로? 그냥 감으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직장인 남자도 '스포츠를 좋아한다'의 정의가 무엇일까? 일주일에 적어도 2-3회 이상, 매번 1시간 이상씩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사람인가? '패션에 관심 많은' 대학생 역시 마찬가지로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걸 어떤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일까? 한달 의류 지출비가 30만원 넘으면 패션에 관심이 많은걸까? GQ나 엘르같은 잡지를 매달 구독하면 패션에 관심 많은걸까? '취미생활을 즐기는' 시니어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이모든 타겟 설정이 다 실제적이지 않은 이유는 저 문구로는 내가 원하는 타겟을 명확하게 발라내기 불가능하고, 따라서 타겟에 접근하는 방법이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저렇게 애매모호한 심리적변수로 타겟을 구분하는건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패션에 관심있다는걸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매달 GQ를 정기구독하면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접근 가능한 타겟'이라 함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1) 타겟의 모수가 산출 가능하고,

2) 그들의 접점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명확하며,

3) 매년 몇명의 타겟이 신규로 유입되고 빠져나가는지가 어느정도 발라지는 타겟


이 기준으로 위의 타겟들을 다시 묘사해보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 30-50대, 스포츠관련 클럽 활동을 하는 직장인 남자
+ 20대, 100대기업 사무직에 지원하거나 해당기업 소식을 정기 구독하고 있는 대학생 여자
+ 20대 초반, 인스타그램에 #패피녀, #패피남 등으로 패션사진을 자주 올리는 대학생
+ 50-60대, 은퇴하고 레저관련 밴드에 가입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니어



물론 저 타겟이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최소한 저런식으로 내가 마케팅 활동을 할 때 어떤 소비자 접점으로 실질적인 타겟팅 활동이 할 수 있을지 각이 나오는 타겟 소비자 정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3. 포지셔닝맵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김대리


포지셔닝맵은 필자를 포함 이 바닥 전문가가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안하는게 낫다. 왜냐하면 포지셔닝맵은 소비자의 인지적요소를 정교하게 설계된 통계적 (돈 많이드는) 방법론으로 발라내서 이를 가장 유의미한 두 축으로 잡아 시장기회를 포착하고자 하는, STP의 정점이자 모든 전략을 한장의 사분면에 응축하는 아주 최고급 테크닉인데, 이걸 필자를 포함해서 대충 대학교때 책에서 한번 본거로 흉내내다가는 그냥 상상의 나래를 펼친 그림그리기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대충 찾아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포지셔닝맵들


원래 포지셔닝맵의 정식 명칭은 영어로 Perceptual Positioning Mapping, 즉 인지적 포지셔닝 맵핑인데, 용어에서 보다시피 포지셔닝맵의 핵심은 소비자가 제품 또는 브랜드를 지각하는 인지적 혜택 (benefit)에 입각하여 자사 및 경쟁제품을 두 축의 포지셔닝 사분면에 위치시킴으로써 포지셔닝 기회를 모색하는 전략이다. 보통은 Price-Benefit Mapping이라고 해서 우선 소비자가 제품/브랜드들로 부터 기대하는 최우선 혜택 (Primary Benefit)을 발라내고, 이를 가격선에 기초해서 두개의 축으로 위치시키는게 가장 보편적이다. (이 부분에 대한 방법론은 HBR의 Mapping Your Competitive Position글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저렇게 소비자가 제품을 어떻게 지각하고, 어떤 혜택을 바라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이 그저 김대리의 상상속에서 대충 두개의 축을 뽑아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본인의 감으로 제품을 위치시키고 있는 포지셔닝맵들은 아무런 감흥도, 전략적 의미도 없는 보여주기식 기획이 되버리기 쉽다.



4. 실제 마케팅 실행 계획이 두리뭉실한 김대리


위 김대리의 기획서에는 4P (Product, Price, Place, Prmotion)가 나오는데, 이건 사실 신제품, 신규 브랜드 런칭할때나 필요한 접근법이지, 이미 제품 돌아가고 있는 스타트업에 조인했는데 갑자기 4P를 늘어놓으며 제품은 이래야하고, 유통은 지금 접근법이 잘못되었으니 이렇게 해야하고, 가격이 너무 높으니 어쩌고... 이러고 있는건 무슨 스타트업 마케터가 컨설팅사가 되어 컨설팅 보고서를 쓰고있는 심각한 헛발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타트업 마케터가 뜬금없이 4P전략을 늘어놓고 있으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 나온다.


스타트업의 마케터라면, 역시나 기획서의 가장 핵심은 실제 실행전략을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내용이 나와야 이를 가지고 의사결정 담당자들이 이게 우리 힘으로 진행 가능한건지, 비용효율이 나오는건지, 리스크는 없는지 등등의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할텐데, 생각보다 많은 대기업출신 마케터들은 앞 부분에서 엄청나게 장황한 분석 결과를 늘어놓은 후에 가장 중요한 이 부분은 하체 빈약한 늙은 슈퍼맨같은 기획서를 쓰고 있으니 한시간의 발표 끝에 사람들의 반응이 "그래서 뭐?" 가 나오는 것이다.


스타트업 마케터의 기획서라면 4P가 아니라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어야 한다.

+ 000한 포지셔닝을 위해 이러이러한 컨셉의 컨텐츠를 제작해야 합니다.
+ 000타겟들 중 페이스북 00명, 인스타 00명, 네이버 키워드 00명, 블로그 00명 등 총 0000명의 모수를 6개월간 타겟하는 온라인 마케팅 계획을 이렇게 수립했습니다.
+ 6개월간 집행해야 하는 총 비용은 00이 예상되고, KPI는 00채널에서 획득비용 00이하로 유지, 컨버젼 비율 00%이상 유지... 입니다.
+ 해당 마케팅 플랜을 통해 총 0000명의 신규고객, 00%의 리텐션 비율 향상, 000의 신규 매출액 발생... 등이 예상됩니다.



적어도 저런 내용은 들어있어야 각 담당자들이 저게 비용이 너무 많이드네, 저거 컨텐츠 제작할만한 역량이 우리가 있냐, 저거 KPI가 너무 낙관적으로 잡힌것 같은데, 저거 포지셔닝이 맞는거냐, 저 타겟이 저 채널에 저만큼 있을까... 뭐 이런 현실적인 후속 논의들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에 조인하는 김대리처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데 STP & 4P를 두리뭉실하게 그리는 상황을 예로 들어서 마케팅전략 수립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헛발질들에 대해 소개해 봤다. 대기업이던 스타트업이던 마케터로서 꼭 기억해야 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객니즈로 구분하지 않는 시장 세분화, 접근 불가능한 타겟 소비자, 상상의 나래속에서 탄생한 포지셔닝 스테이트먼트, 후속논의가 불가능한 두리뭉실한 실행계획은 마케팅 전략으로서 가치가 없다.






** 본 글은 김대리의 헛발질 시리즈 입니다.

** 1화 보기 - 인스타그램 초기마케팅 헛발질들을 정리해봤다





글쓴이는 스팀헌트 (Steemhunt) 라는 스팀 블록체인 기반 제품 큐레이션 플랫폼의 Co-founder 및 디자이너 입니다.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기획자로 일하다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본업을 디자이너로 전향하게 되는 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고군분투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운영중인 스팀헌트 (Steemhunt)는 전 세계 2,500개가 넘는 블록체인 기반 앱들 중에서 Top 10에 들어갈 정도로 전 세계 150개국 이상의 많은 유저들을 보유한 글로벌 디앱 (DApp - Decentralised Application) 입니다 (출처 - https://www.stateofthedapps.com/ran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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