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의 종말 - 1

개인화의 반면에는 세분화가 따라온다

더팀스(the teams)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공채'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공개 채용'의 준말이기도 한 공채 제도는 공개적으로 '우리 회사는 이러이러한 분야의 사람을 이렇게 뽑습니다'라는 것을 알리고, 모여든 인재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시험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우수한 점수 또는 기준에 합격한 인재를 채용하는 결과로 연결된다.

서양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동양권에서는 상당히 유서깊은 제도이며, 정확한 제도로서의 기원을 따진다면 수나라 때 실시된 과거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도 '널리 방을 붙여 어진 이를 구했다'와 같은 말은 자주 나오지만, 진나라 때의 구품관인법, 중정 제도에 의한 인재 추천이 가져온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수나라 때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500년에 가까운 역사와 합리성을 자랑하는 이 공채 제도가 최근 무너져가고 있다.

뉴스 검색에서 '공채 축소'라는 말을 찾아 보자. 나는 이름도 잘 모르던 기업들이 경제 한파의 영향으로 공채를 축소한다는 기사가 우르르 쏟아진다. 반대로 '공채 확대'를 찾아 보자. 기업이 공채를 확대한다는 뉴스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기업마다 비중을 어떻게 늘리고 줄이는지는 다르겠지만, 전반적인 기조로 공개 채용은 줄고 상시, 수시 채용은 늘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체감이 될 것 같다.

며칠 전 개인적인 일이 조금 있어서, '이 시국에' 일본을 잠시 다녀왔다. 일을 보러 가는 김에, 겸사겸사 대학 선배이기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VC 일을 하는 분과 잠시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의 공채와 같은 개념은 아직 남아있지만 최근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은 인턴쉽을 통한 채용이라고 한다. 비단 우리나라만 공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채의 비율은 줄어들고 상시/수시 채용, 말하자면 종래의 '특채'가 그 자리를 대체해 가고 있는 것일까?


1. 망치와 송곳 - 산업화와 정보화

이 둘은 우리 모두 잘 아는 도구이다. 망치는 무언가를 때리기 위해 만들어지고, 송곳은 무언가를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다. 물론 여러분이 망치로 물건을 찌르고 송곳으로 물건을 두들긴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사회상례적으로 보편타당한 쓰임새'라는, 쉬운 말을 일부러 허세 가득 담아 말하는 관점에서-저 여백을 포함한 17글자의 표현은 '일반적'이라는 3글자로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바라본다면 망치로는 물건을 두들기고 송곳으로는 물건을 찌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조금 더 당연한 얘기를 하자면, 망치의 끝은 뭉툭해야 하고, 송곳의 끝은 뾰족해야 한다. '여러분의 집중력 향상을 위해 못의 대가리와 면적이 꼭 같은 망치를 개발했습니다!' 라거나, '여러분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젓가락 모양으로 개량한 송곳을 만들었습니다!'라는 사람이 있다면 물론 그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성공을 기원하기엔 꽤나 난감한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리고 이 중언부언한 말의 결론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명료하다. 바로 내가 공개 채용을 망치로, 수시 채용을 송곳으로 비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채용은 간단했다. 크게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학력과 그렇게 모나지 않은 성격, 적절한 업무 이해력, 남들만큼의 실력만 있다면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 세대라고 해서 면접 질문의 모범답변이나 면접관의 마음에 드는 답변을 족보처럼 돌려보는 일이 없었겠느냐만은, 산업화 시대의 채용은 그렇게, 지금의 우리들이 보기에는 어쩌면 단순하리만큼 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 세대의 채용은 다르다. 타인을 뛰어넘는 학력으로도, 상사의 말을 존중하고 동료들과 원만하며 후배들에게 상냥한 성격으로도, 3일이면 내 직무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는 업무 이해력으로도, 남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할 실력으로도 채용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옆에 앉은 사람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어필해야 하며, 성공적인 어필 이후에도 나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평가되어 어떤 점수를 받을 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여기에서 산업화 시대의 채용과 정보화 시대의 채용이 갖는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 세대, 산업화 시대의 미덕은 더 많은 양을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팔아치우는 것이었다. 조악한 수제품을 대체할 초기 공산품이 만들어졌고, 초기 공산품은 더 나은 품질의 후기 공산품으로 대체되어 얼마든지 팔려나갔다. 산업화 시대의 공급과 수요는 지금보다 0 하나까지는 아니더라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의 높은 수준에서 예상되고 결정되었다.
반면 우리 세대의 미덕은 다르다. '옆에 계신 언니가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는 겸손의 말은 이전만큼 아름답게 울리지 않고, 더 빨리, 더 좋게 만들어도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암묵의 한계 안에서 남들보다 뛰어남을, 남들과는 다름을, 남들보다 특별함을 어필해야 잘 팔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말 튼튼하고 질좋은 흰색 블라우스는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가 늘 생각하는 것은 이 블라우스를 어떻게 독특하고 멋지게 입어낼 것인가이다. 공산품의 한계치에 다다른 퀄리티의 향상을 전제로 할 때, 다름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다.

여러분은 기존 제품보다 3% 튼튼한 청바지에 매혹되는가? 아니면 전 인류의 3%만이 입고 있는 청바지에 매혹되는가?

이렇게 시대의 흐름은 인원수와 물량의 우위를 통해, 마치 망치로 때려 승리하는 것과 같은 모습에서, 예리하고 섬세한 개인화가 불러낸 욕구를 자극하는, 마치 송곳으로 찔러 승리하는 듯한 양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다름의 가치와 개인화에 집중할 수록 더 많은 수가 팔린다는 아이러니가 당연해진 세상이라면, 당연히 여러분이 어필해야 할 것은 남들과 다른 것, 남들보다 특별한 것이고, 당연히 공채는 여러분의 그런 특별함을 섬세하게 잡아내기 어렵다.

공채의 종언은 곧 정해진 흐름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남들과 같은 스타일, 남들과 같은 소비를 하는 것이 쿨하다고 느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아 뭐...응, 네, 이런거요.


2. 취업시장에서 걷어내야 할 공채의 그림자

앞서 섬세한 개인화에 따른 욕구의 자극이라는 표현을 썼다. 말인즉슨, 'XX한 개인', 'OO한 페르소나'에 맞춘 마케팅, 제품 개발, 영업, 센스, 직감, 생각...그 무엇이든 하나라도 가능해야 바뀐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금 근시안적인 생각을 하자면 '취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공채 시대에서 수많은 이득과 성과를 거두었던 이들이, 특채 시대의 여러분들을 향해 남들보다 달라지라고, 나를 따라오라고 외치고 있는 양태가 바로 그것이다. 심히 목불인견이라 아니할 수 없는 참상이기 그지없다.

저렇게 이야기하면서, 마치 여러분을 새 시대의 특출난 인재로 만들어 줄 것 같은 사람들을 잘 살펴보자. 모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나왔거나, 대한민국에서 이름난 대기업을 다녔던 적이 있거나, 또는 그 대기업에서 일했던 경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사실 갖고 있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 간판들을 마치 대단한 어필 포인트인 양, '내가 이렇게 해냈으니까 너희는 내 말을 따르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호도하는 모습이다.

글을 쓰면서 이렇게 격한 표현을 사용한 적도 드문 것 같지만, 참으로 당황스럽지 않은가? 본인들은 공채 시스템의 이득을 있는 대로 보아 놓고, '공채의 종말이 다가오니 여러분은 달라져야 한다'고 소리높여 외친다. 뛰어난 학력과 대기업 전직 경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에 영광스런 하루를 보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취업의 성공비결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분만큼 치열하게 경쟁해 본 적이 없다. OO대 출신으로, XX기업을 다니던 소위 '훌륭하신 분들'이다. 이력서 한 줄을 어떻게 하면 채워넣을까, 어떻게 하면 내 자기소개서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단 한 번도 고민한 적도 없을 사람들이 여러분의 취업을 지도한다니 참으로 골계미 넘치는 일 아닌가.

물론 이렇게 지적하고 있는 나 역시 세간에서 말하는 '좋은 학력'의 소유자이고, '대기업'의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팀에서 그 학력과 경력은 우스갯소리 또는 농담따먹기의 대상이 될 뿐이고, 우리 팀 모두는 학력과 경력이 능력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XX대를 나온 누구', 'OO기업을 나온 누구'라는 것이 얼마나 지금 시대에서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깨지기 쉬운 허상인지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실 우리 팀도 학력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당장 우리 마케팅 이사님부터가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을 나오셨으니까. 다만 지금의 시대에서 앞으로의 세대를 향해 그 학력과 경력을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외침이 될 것인지를 알기에 굳이 강조하거나 말하고 다니지 않을 뿐이다. 나처럼 관심받기 좋아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참고로 한국의 대학은 모두가 최고로 훌륭한 대학이기 때문에 굳이 어디인지를 말해서 분란을 조장할 생각은 없다.

자기방어를 위해 첨언하자면, 좋은 학력이 완전히 무가치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나만 해도 출신 학교를 얘기하면 사뭇 달리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은근슬쩍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사실 그 얘기라도 안하면 자꾸 다들 나를 무서워해서 슬금슬금 피하곤 하기에, 굉장히 추하지만 관심 좀 구걸하려고 얘기할 때도 있다. 어느쪽이던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님에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좋은 학력이 가져다주었던 수많은 이점들이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공채의 시대에서 학력은 '적절한' 수준 이상임을 증명하는 훌륭한 척도가 될 수 있었다. 일단 책상 앞에 앉아있던 시간이 길었다고 생각한다면 인내심과 끈기를 가졌다고 보아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평균 또는 그 이상의 이해력과 독해력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여도 무방했을 것이며, 제도권 교육에 잘 적응해서 높은 성과를 이루었기에 산업화 시대의 직무적응 역시 더 빠르게 가능하리라 보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얻기 좋은 '스펙'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거짓말이 아니라, '나 와세다 나왔습니다' 하는 것보다 '저 PHP 좀 할 줄 압니다'라고 말하는 게 더 반응이 좋다. 너무나 중요해서 두 번 말하지만, 학력과 경력이 '능력'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나 중요해서 짚고 넘어가자면, PHP 할 줄 안다는 말은 뻥이다. 그래도 영업 나가서 관심을 끌어야 할 때는 무척 효과적이다. 나중에 제대로 사과할 수만 있다면.

막말로, 진심을 담아 외치지만, 좋은 학력과 대기업에서의 직무 경험이 성공을 가져다 준다면 난 왜 이렇게 성공을 위해서 개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는가. 오히려 저 학력과 경력이 가져다 준 것은 소위 말하는 '허세'밖에 없었다. 그거 뺀다고 1년 내내 죽도록 스타트업 판에서 고생해서 이제 스타트업 물 좀 먹었구나 하는 찰나에, 마치 휴일날 석촌호수에 산책을 나갔는데 웬 여인이 물 속에서 긴 칼을 주며 '당신은 우리의 왕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학력과 경력을 무슨 보검처럼 휘둘러대는 모습을 보면...그저 웃음뿐이다.

첨언이 길었지만, 결론은 하나다. 어떤 광고를 보아도 좋지만, 'XX대 출신', 'OO기업 출신', 'YY년 경력'이라는 말은 일단 걸러도 좋다는 것.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최근 들은 말 중에, '상현님은 왜 글이 그렇게 긴가요?','너무 많은 걸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아 어려워요'라는 말이 있었다.

여러분의 의견은 소중하기 때문에, 2부...혹은 3부 정도로 이 주제를 나누어 써보고자 한다. 워낙 할 말이 많은 주제이기도 하고.

2부는 2019년 10월 20일과 21일 사이의 그 언제인가쯤에 업로드 될 것이다.
주제는 한 마디로...'그래서, 결국 취업을 잘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가 될 것 같다.

앞에서 한참 지금 상황이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그런데 지금은 뭐가 문제라는 것까지 떠들었으니, 해결책도 나름 제시해 드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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