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이 쉬운 걸 왜 이렇게 어려워 해?

 

더팀스(the teams) / 한상현 / 20. 11. 14. 오전 3:02

최근 자소서를 접할 일이 늘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과 방식으로 정신 공격을 받고 있다.

자소서, 자기소개서의 준말이지만 아무튼, 채용 플랫폼의 일원으로서 여러 취준생들이 작성한 자소서를 볼 때 마다, 왜 이 간단한 것을 이렇게 어려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농담하는 거냐고? 진담이다. 거만떠는 거냐고? 아니다. 그럼 왜 이러냐고? 이러나 저러나 자소서를 접해야 하는 입장에서, 주옥같은 명문은 아니더라도 너무 고칠 게 많아 시어머니 며느리 타박하듯 조곤조곤 하나하나 짚다 보면 이게 갈구는 건지, 도움을 주는 건지 나도 감이 안 올 정도라, 이 세상이 좀 더 좋은 글로 넘쳐나길 바라는 마음이 절로 생겨나는 걸 어쩌랴.

사실 글을 써달라거나, 이런저런 주제로 글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잊을만 하면 받는 편이다. 예전에 썼던 피드 중에서는 내용이 좋다면서 해당 주제로 2시간 남짓의 강연을 한 적도 있다.

맞다. 자랑이다. 얼굴 예쁜 재주와 기민한 손재주가 없으니 글 좀 끄적이는 재주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신은 아직도 나에게 결혼이라는 축복을 내려주지 않고 있지만, 연애할 시간도 없이 24시간 중 14시간 정도를 일해도 끄떡없는 문장력을 내려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다지 공평한 건 아닌 것 같다만.

거기에, 이제 더팀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지도 3년째. 채용과 취업에 대해서는 서당개 풍월 읊듯 주워섬길 때도 되었다. 그래서 이전부터 팀원들이 '이거 쓰면 조회수 터질텐데'라고 은근슬쩍 부추겼지만 절대 쓰지 않았던 주제, 자소서를 주제로 글을 좀 써보려 한다.


1. 자기소개를 하랬더니 사주단자를 읊고 있다

'저는 고위 공무원인 친척 어른과 상당한 자산가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 일찍부터 XX업계에 대한 매력을...'

개인이 쓴 내용이라 문장을 그대로 차용하진 않았지만, 얼추 이런 내용으로 시작하는 자소서를 최근 보게 되었다. 그렇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어떤 기업에 어떤 직군으로 지원해도 이렇게 시작하는 자소서는 무조건 탈락이다. 자기소개는 '나'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지, '우리 집안'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척 어른이 고위 공무원이고 할아버지가 자산가인 것이 업계에 대한 매력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자소서가 무조건 탈락하는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괘씸죄. '내 친척 중에 고위 공직자가 있고 우리 집안은 돈이 많으니 어서 나를 선발하지 않으면 멍석말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야!'라고 인사담당자한테 시위하는 건가 뭔가. 그래서 이 사람을 뽑으면 우리 회사에 건물이라도 한 채 지어주나? 막 죄를 저지르고 현행범으로 잡혀도 친척 어른이 헛기침 몇 번 해서 훈방조치되고 그러나?

자기소개서의 중심은 '나'에 있어야 한다. 업계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정말 친척 어른과 할아버지의 영향이었다면, 그냥 그렇게 쓰면 될 일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수식하고 드러내며 자랑하는 건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 만약 독립운동가나 참전용사의 자손이라면 일단 나는 인정하겠다. 그런 건 좀 더 자랑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2. 지원동기는 '우리 회사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써야 한다

'제가 XX직군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는...', '어릴적부터 XX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장담하는데, 이렇게 시작한 지원동기의 결말은 거의 100%에 가깝게 '저의 능력을 펼칠 기업을 찾던 차에 귀사를 알게 되어 지원하였습니다.'로 끝난다. 그리고 떨어진다.

더팀스는 채용을 설렘으로, 마치 소개팅과 같은 맥락으로 풀어내려 노력한다. 하고 많은 설렘 중에 소개팅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기업이 구직자를 찾을 때 마치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사랑꾼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소개팅에 나갔는데 상대방의 외모나 성격이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랑 사귀잔다. 마음은 기쁘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물어본다. '왜요?'

'딱히 이유는 없고, 마침 연애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당신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계속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어릴때부터 영특하단 소리를 들었다느니, 학교 다닐 때 어디 유학을 다녀왔다느니,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는 내가 자신있다느니...만약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진지하게 연애 대상으로 고려할 것인가? 갖고 있던 호감도 박살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그런 행동을 반복하며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않는가?

거대 글로벌 기업이던,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기업이던 상관 없이, 모든 기업은 우리에게 지원한 구직자가 우리 기업을 Only one으로 여기길 바란다.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는 않으니 기업도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지만, 최소한 '당신네 기업은 Just one of them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너 돈 없잖아 거지야'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나? 눈 깜빡할 사이에 오른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상대가 왼손잡이라면 왼쪽으로 돌아가겠지. 여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구직자에게 구성원의 자리를 허락하는 기업은 없다. 있다면 그 기업은 사랑이 필요없는 기업이니 도망쳐야 한다.

결론적으로, 여러분이 지원동기 부분에 내가 이 기업을 사랑하는 이유, 이 기업이 아니면 죽고 못 사는 이유를 적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애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업에만 붙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업은 높은 확률로 여러분을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다.

3년 사이에 세월을 많이 피해간 우리 대표님은, 본인이 피한 세월까지 맞고 있는 내가 1년 가까이 구애를 했지만 더팀스에 작은 자리 하나 내주질 않았다. 지금이야 고맙다, 고생이 많다 하면서 안 하던 표현을 슬금슬금 하면서 사람 소름돋게 하시지만, 내가 진지하게 '나 이 기업에 들어와서 일해야 합니다.'라고 강하게 더팀스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날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3. 상반기에만 기업 100개 넘게 지원했는데, 서류에서 다 떨어졌어요

지금부터 잠깐 이야기가 옆길로 샐 건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여러분이 떨어진 이유는 100개 넘는 기업들 중에 여러분을 원하는 기업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게 아니라, 그냥 여러분이 기업을 100개 넘게 지원했기 때문이다.

방금 '이 기업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지원동기에 적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100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하면서 하나하나 기업의 매력을 찾고, 이 기업에 꼭 일하고 싶고, 이 기업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유를 찾을 수 있는가? 요새 서양에서 한다는 폴리 아모리, 뭐 이런 건가? Only one이 뭐 이렇게 많아?

기존 채용사이트를 찾은 여러분의 패턴은 아마 단순할 것이다. 직군 분류 설정해 놓고, 연봉이나 기타 다른 조건 하나 정도 더 분류해 놓고, 기업이 주르륵 뜨니까 일단 슥 훑어보고 '음 블랙기업은 아닌 것 같네' 하고 지원, 또 슥 훑어보고 지원, 또 슥 훑어보고 '여긴 우리집에서 머네'하고 패스...뭐 이랬겠지.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게 지원해서 최종 합격하면, 이 기업과의 행복한 연애가 시작될 것 같은가? 어디 사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직업이 뭔지 딱 이 3가지만 보고 연애하라면 할 수 있는가? 왜 그래놓고 나중가서 취업에 실패했다고 신세 한탄을 하나?

기업은 조선시대 왕세자비 맞을 때처럼 일단 사주부터 주르륵 받아놓고 그 중에서 고르는 게 아니다. 마음이 가는 기업을 골라야지, 기업이 어떤 일을 하고 그 기업에서 누구와 어떻게 일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태로 지원하면 서류 단계에서부터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이제는 기업들도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요즘 영업하면서 대표님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 '그냥 우리 회사가 뭐 하는 회사이고 본인이 무슨 일 할 지 정도만 알고 왔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다. 이것만 알고 가도 남들보다 그나마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우리 기업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온다면? 학벌, 스펙 따지기 전에 일단 날 너무 사랑한다는데 얼굴이라도 좀 보고 싶지 않을까?


4. 장점은 너무 많은데 단점은 졸렬하다

다시 가던 길로 돌아와서. 성격이나 본인이 느끼는 본인의 장단점을 쓰라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장점은 2~3가지씩 한바닥 천지빼까리로 적어 놓고, 단점은 2~3줄 적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적은 단점도 '처음부터 완벽하지 못한 게 단점', '일을 너무 꼼꼼하고 세심하게 하는 게 단점', '결단력이 너무 강한 게 단점'...감히 말하건대, 이런 서술은 '졸렬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잘못된 서술을 하는 이유는, 장점을 묻는 것의 의도 파악은 쉬운 반면, 단점을 묻는 의도는 파악을 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부각시키고 싶어 한다. 그 말은 반대로,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설마 모든 걸 다 가졌다 하더라도, 청주한씨 32대손 나 한상현은 가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단점을 묻는 의도는 너무나도 쉽다. '당신은 어떤 리스크를 내재하고 있으며, 그것을 얼마만큼 신경 쓰고 있고, 어떻게 매니징하고 있습니까?'

나는 너무나도 명백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정말 끔찍하게 게으르다. 어느 정도냐면, 절대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냥 내일 해도 되는 일이면 내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이란 데드라인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항상 모든 일은 데드라인과 밀리세컨드의 차이를 유지하며 완성에 이른다. 10분 일찍 나오면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데, 꼭 10분을 늦게 나와서 택시를 탄다. 그리고 하기 싫으면 할 마음이 들 때 까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단점을, 나라면 어떻게 자소서에 적어낼까?

먼저 솔직함이다. 게으르다는 것, 인정한다. 그리고 게을러서 큰 코 다친 적도 있다는 것까진 부끄럽지만 오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실수를 계기로 내가 나의 게으름을 '리스크'로 인식하게 되었으니까. 그러면서 이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 또는 이 나름대로 효율을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적을 것이다. 그래야 이 리스크를 내가 잘 인지하고 있고,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채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재한 리스크까지 채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점을 적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내재한 리스크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매니징하고 있는가를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공중도덕을 심각하게 어기거나 인성 또는 업무상 치명적인 단점은 적으면 안 된다. '저는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정신이 들면 주변 물건을 모두 부숴버립니다.', '저는 대인기피증이 심각해 처음 만난 사람과 얘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폭력성향이 있는 게 단점입니다'....이런 건 단점이 아니라, 결점이라고 한다. 길고 짧은 게 아니라, 그냥 생각할 가치가 없는 거니까.


5. 이것도 잘 하고, 저것도 잘 해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책 한 권 분량의 인생사가 있다는 말이, 기자들 사이에선 격언처럼 돈다고 한다. 뭐 어디서 줏어들은 말 가지고 또 잘난척 한다 싶겠지만, 그만큼 자기소개서에는 쓸 말이 많다는 뜻이다. 내 매력을 드러내 보라는데 어디 매력이 한둘이어야지.

그래서 다들 하는 실수가,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요것도 넣어서 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과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침착한 성격, 세심한 일처리, 넓은 시야, 뛰어난 리더십, 훌륭한 팔로워.....아니 뭐 메타몽이세요?

자기소개서를 돌려 쓰지 말라는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어떤 직군, 어떤 회사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전체 자소서의 목적과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 가지 장점과 성향, 능력만을 갖고 있지 않다. 엑셀과 파워포인트, 일러스트레이터와 php를 모두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영업직군에 지원하며 '저 근데 일러스트레이터도 잘해요', '저 php도 할 줄 알아요'라고 하면 과연 취업에 더 유리할까? 일반적으로는 아니지만, 기업의 성향과 업무에 따라서는 유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 별로 자소서를 다르게 써야 하는 것이다.


6. 뼈대부터 만듭시다

나는 글을 보통 '사막에서 길 찾기'라고 표현한다. A지점에서 B지점을 가는 여정이 글의 내용이라면,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중간중간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 글의 '뼈대'이다.

전체 자소서의 목표를 '나의 XX한 점 어필'로 잡았다면, 중간중간 어떤 내용을 전개해 갈 것인지 미리 계획을 짜 두고 글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잘 쓴 글은 보통 E자 형태를 보인다.

주제(제목)

1. 첫 번째 문단

2. 두 번째 문단

3. 세 번째 문단

끝인사

이 예시에서, 각 글의 파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으로 축약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각 단어와 문장은 글 전체 흐름과 맥락을 방해하지 않는 흐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글의 뼈대를 먼저 잡고, 각 문단에 살을 붙여 나가는 식으로 글을 쓰면 전체 내용이 충돌하거나 모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간단해도 좋으니, 일단 목차부터 만들어 놓고, 목차를 기준으로 내용을 추가해 가면 된다.

이 과정이 없이 글을 쓰면, 갑자기 중간부터 내용이 두서 없게 변한다거나, 글의 주제가 통일되지 않아 혼란스럽거나, 하여간 글에 갑자기 뒤틀린 황천의 맛이 깃들게 된다. 양식 코스요리 중간에 라면이 나오면 이상하듯, 전체 글의 틀은 잡아놓고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7. 숨 쉬고, 앞 뒤 잘 살피고, 목소리 크게 내고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이 글을 입으로 소리내며 읽는 분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글을 읽으며 일종의 호흡을 판단한다. 나는 항상 퇴고할 때 문장을 어떻게 고쳐야 더 매끄러운가, 필요없는 문장 성분은 없는가를 판단하면서 호흡이 긴 곳, 너무 짧은 곳은 없는지 늘 체크한다. 문장의 호흡이 길면 읽는 이에게 피로감을 주고, 적당한 부분에서 끊어주지 않으면 소위 '안 읽히는 글'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호흡이 긴지 짧은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숨을 들이쉰 상태에서(일부러 크게 들이쉬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숨쉬듯) 문장을 읽어 보면 된다. 쉼표나 온점이 나올 때 까지 숨을 쉬지 않고 소리내어 읽었을 때, 숨이 달리는 지점이 호흡을 끊어주어야 하는 지점이다.

그렇게 문장의 호흡을 잡았다면, 글 전체에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전체적으로 가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으레 글을 고치면서 한 부분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한 군데 글을 고치면 해당 문장의 앞 또는 뒤와의 관계, 문장을 고쳤다면 앞 뒤 문장 간의 관계를 반드다시 다시 체크해야 한다. 이 부분을 신경쓰지 않으면 같은 조사가 두 번 들어가거나, 주어가 두 번 나오거나, 꼭 필요한 시점에 시제가 나오지 않는 등 기상천외한 문장들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정말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또박또박 소리를 내어 읽어보면 된다. 눈으로 읽을 때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소리를 내어 읽으면 생각보다 어색한 점이 쉽게 눈에 뜨일 것이다.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듬으면 된다.


8. 뭘, 언제, 얼마나,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는 으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잘 알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험을 설명하거나 성과를 설명할 때에는 특히, 굉장히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래서 원만하게 잘 해결되었던 경험이 있다.',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크게 개선되었다.'...아니 뭘 얼마나 원만하게, 얼마나 좋게, 어떻게 크게 개선된 건지 이야기를 해 줘야 알 것 아닌가. '서로 얼굴도 보지 않던 두 팀원이 저로 인해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전에 비하여 35% 개선되었습니다.'와 같이, 구체적인 정황을 알려주거나 수치로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왜'인데, 자소서에 쓰는 지원동기부터가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어요?'를 묻는 것이다. 살다 보면 여러 선택의 순간이 있고, 무언가를 선택한 결과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할 때, 그 선택의 이유를 말하는 것은 간과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아래 예시를 보자.

'어릴적부터 광고 영상에 흥미가 많았습니다. 그 때는 단순한 흥미였지만, 자라면서 광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점차 강해졌고, 대학도 언론홍보학과를 선택하여 본격적인 광고와 마케팅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배운 이 마케팅 지식을 실무에 적용하여 훌륭한 마케터가 되고자 합니다.'

뭐 나쁘진 않지만, 그냥저냥 평이한 글이다. 이 글을 더 풍성하게, 다채롭게 해 주는 것이 빠졌기 때문이다. 어릴때는 왜 광고 영상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자라면서 흥미와 관심이 더해진 이유는 무엇인지, 언론홍보학과까지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고 마케터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 행동의 이유를 밝히는 것은 나에 대한 정보를 입체적으로 만들며, 글을 읽었을 때 나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기제가 될 수 있다.


9. 질문은 내가 한다

자, 역할극을 하나 해 보자. 나는 면접관이고, 여러분은 취준생이다. 우리는 예전에 알던 사이가 아니고, 오늘 이 자리, 대면 면접이 행해지는 장소에서 드라마틱한 인생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아니, 넌 그 때 그 싸가지...!?'같은 대사는 말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여러분도 엄청나게 긴장해 있겠지만, 사실 나도 꽤 쫄아있다. 면접을 많이 해 본 것도 아니고, 혹시라도 좋은 인재를 못 알아볼까봐, 반대로 이상한 친구를 뽑게 될까 신경이 곤두선 상태이다. 이제 면접이 시작되었고, 지원자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몇 가지 준비해 두었던 질문을 하고, 시계를 봤는데...아차,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 친구를 뽑던 안 뽑던, 다른 지원자와 시간에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까.....?

상당히 많은 면접관들이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다시 질문으로 던진다. '여기 보면 학교 다닐 때 XXX 마케팅 대외활동 했다고 하는데, 그 때 정확히 무슨 일을 했어요?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뭐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경우, 면접관과 나는 그 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당연히 내 정보를 잘 알 리가 없고, 나도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그냥 내 합격여부를 판정할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주어진 정보를 기반으로 질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자소서에 쓰는 내용은 면접 단계에 올라가서 내가 받을 질문을 미리 설계해 놓는 것과 같다. 질문도 내가 하고, 답변도 내가 하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가.

그러니 자소서에 쓴 내용은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행여라도 자소서와 다른 말을 했다면 바로 탈락 대상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자소서에는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고 했는데 '주변 친구들하고는 관계가 어때요?'라는 질문에 '친구가 많지 않아요'라고 답한다면, 그냥 자소서 내용 전체가 대충 허울좋게 지어낸 거짓으로 간주될 뿐이다.

그만큼 내가 어떤 말을 썼고, 어떤 생각으로 이 회사에 지원했는지, 어떤 계획으로 면접에 임할 것인지까지 미리 어느 정도는 생각하며 자소서를 쓰는 것이 좋다.


사실 한 항목만 더 채워서 '자소서 10계명' 같은 유치찬란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요새 우리 대표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항상 새벽 4시에 잠드는 생활을 하다 보니, 더 이상 글을 이어갈 체력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알려줬으면 자소서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는 내 말에는 이제 다들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아니면 말고.

자소서는 기업에 보내는 나의 첫 연애편지이며, 사랑의 세레나데이며, 구애의 춤이다. 이 기업의 매력을 파악해서 왜 이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지, 왜 내가 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자소서를 돌려쓰거나 회사명만 바꿔서 도장처럼 찍어내는 건 어불성설이다.

최근 챗봇 취업상담을 받으러 온 구직자 중 광고기획사를 지망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광고기획사는 다 똑같아서, 그냥 자소서 하나로 돌려썼어요.'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바로 답해 주었다. '네, 그래서 떨어지신 거에요.'라고. 다 같은 광고기획사라도, 주력으로 진행하는 브랜드가 무엇인지, 어떤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지, 그 중 내 마음을 움직인 광고는 무엇인지, 어떤 광고 스타일과 클라이언트를 선호하는지, 최근 10개 작품은 무엇인지....다른 점은 무궁무진하다. 그런 점을 생각하지 않고 같은 자소서로 돌려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SK하이닉스에 지원하면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제출한 자소서를 기업명만 바꿔 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기업은 우리 기업에 관심을 가져주고, 정성을 들이며 좋아해주는 사람을 절대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판단의 첫걸음은 자소서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요한 만큼, 쉽고 간결하게, 다양한 버전을 만들어 승부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가 아닐까.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로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