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공감능력

힘들 때, 기쁠 때, 슬플 때, 즐거울 때, 우리는 공감을 해야 한다.

(주)클린그린 / Seonhong Chae


스타트업은 항상 힘들다.


자금 압박과

업무 압박과

시간 압박 등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창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텨나간다.


어느 대표님이 그러더라.


"2년째 계속 힘들다 보니 이젠 힘들다는 말도 지겹다."


CEO의 약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한 분이 매우 공감 가는 말을 하더라.


C: 씨발

E: 이 짓을 

O: 오~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다들 어느 정도 기업가치를 올리면

팔아버리고 사업 접으려는 사장님들이 많아지지.


어느 정도 그 마음은 공감한다.

그만큼... 아슬아슬한 리스크를 지고,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삶의 연속이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각오하고 시작한 거 이왕이면,

처음 세운 뜻을 다시 되뇌면서

우린 꿈을 구현해 가는 사람들이잖아. 


나의 월요일은 항상 기쁘다.

기다려지고, 행복하다.


일이 안 힘드냐고?


아니, 진짜 많이 힘들다.

피곤하고, 짜증 날 때도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사업은 즐겁다.


나라고 매 순간 웃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진지하게 심각한 고민으로 인상이 찌푸려져 있을 때도 있고,

일이 잘 안 풀려 모든 일을 다 정지시키고 한 일주일 정도

잠수 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아침마다 

나는 거울과 대화를 한다.


"야! 나는 너를 잘 알잖아~ 오늘도 널 응원해"


출근길에 받은 한 통의 전화!

나와 동갑내기 창업자의 넋두리에 마무리는...


"잘 하고 있어. 너무 고민하지 말고 좀 쉬든지."


(출처: 허영만 작가님의 "식객")


나는 응원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나에게 힘내라는 말보다 응원한다는 말이 너무 당긴다.


힘들어서 지쳐있는데

힘내라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왠지 힘내서 더 몰아붙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달까?


"힘내라~"

"파이팅"

내가 너무 예민한가보다.

좋은 의미로 건네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힘들 때, 힘내라는 말은 공감되지 않는 인사말이다.


너무 잦게, 너무 흔하게 쓰다보니 그런가?

어쩌면 나와 거리가 있고, 

나의 상황에 공감하지 않은 일상적인 위로이다.


그에 반해 내가 좋아하는

"응원한다"는 말은

나의 힘듦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

나와 같은 상황을 비슷하게나마 

공감하기에 할 수 있는 연대감 있는 위로이다.


응원과 힘내라가 뭔 차이가 있냐고 물을 수 있다.


개념적으로 응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힘내라고 말하는 것도 응원이겠지만,

당신이 무얼 하든, 어떻게 하든

전적으로 믿고, 지지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힘을 더 낸다면, 그것을 지지한다.

잠시 쉬어야겠다면, 그것도 지지한다.

포기하고 단념한다면, 그것도 지지한다.


당신이 나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하는 것을

난 믿고 지지한다.


그런 의미로 난 당신을 응원한다.


쉰다는 것!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쉬는 것을 소비적인 행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리 많이 쉰 적이 없는 사람이라

이런 말은 할 자격이 없지만,

쉬는 것은 생산적인 행동이다.

이런 면에서 난 참 생산적이지 못 한 놈이다.


쉬는 것은 재충전의 시간이다.

힘이 고갈되면 힘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재충전을 해야 한다.


그간 나는 휴가는 별로 없었다.

어쩌면 정신없이 살아가면서도

힘이 남아있었나 보다.


그리고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늘 재충전이 되어왔었나 보다.


나에게는 가족이 나의 충전소이다.



그리고 포기하고 단념하는 것!

모든 일에 무조건 끈기 가지고 매달리는 것도 어리석다.


어떤 때에는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아까워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포기한 사람에게 

"넌 왜 끈기가 없니?"

라는 말보다는

"수고했어!"

라는 말이 더 필요하다.


포기해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보다 더 처참하다.

더 고민을 많이 했고,

더 두려움에 떨어야 했으며,

더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서

내린 결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비꼬거나,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식의 박수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것을 각자의 개성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의견을 나누는 것이 스타트업의 미팅)


공감이란 것은 조언하거나 가르치려는 입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공감이란 것은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려는 입장에서 나온다.


회사 내에서 공감이 그러하다.


경직된 조직체계와 상급자의 위치에서 

직원들을 바라보면, 공감이 생기지 않는다.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려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스타트업의 수평적인 조직의 결과는

단지, 같은 테이블 위에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다.

복장이나 호칭의 문제가 아니다.


연공서열이나 나이, 경력의 틀을 깨는 것은 "수단"일뿐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결과는 "공감"이다.


공감하기 위해 우리는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내 회사라는 주인의식을 가지라"라고 백날 말하는 것보다

대표 스스로가 직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 회사가 내 회사라고 인지"하도록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다.


내 회사가 좋은데, 망하게 놔둘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앞으로 내 인생을 걸만큼 좋은 회사가 내 회사이면,

더 좋게 만들려고, 더 힘을 낸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직원이 그렇게 느끼도록 회사를 만들어가려면,

직원의 시각에서 회사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고쳐나가야 할지,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를 알게 된다.


그다음은 바로 행동의 문제만 남는다



어떤 정치인이 갑자기 지하철로 다니기 시작했단다.


유독 선거철이 되면

하루 최저생계비로 하루 체험하거나, 

극빈층의 삶을 코스프레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쇼인 것을 안다.

(물론 제대로 된 정치인, 지도층도 있다.)


그들이

공감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기에 그러하다.


쌀이 떨어져 굶어 본 적도,

차비가 없어 먼 길을 걸어 본 적도,

다수의 남자들이라면 의무적인 군대를 가 본적도,

남편과 자식을 위해 뜬 눈으로 걱정하는 어머니인 적도,

가족을 위해 온갖 냉소와 거절 속에서 허리를 굽혀야 하는 아버지인 적도,

신체의 불편함으로 사회 시스템에서조차 소외를 당한 적도 없다.


물론 이런 것을 다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리더의 자격은 아니다.


물리적으로도

이런 경험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다양한 삶들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간접경험이란 능력이 있다.

커뮤니케이션!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든,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든,

만남과 협의를 통해서든...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공감할 수 있다.


상대가 말해도

귀에 담아두지도 않기에

뇌에 기억하지도 않으며, 

마음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는 머나먼 아프리카에 가 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 굶주리고, 아픈 아이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TV프로에 소년소녀가장을 보며,

ARS 후원을 하게 된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부당하고, 불의한 대우가 있을 때,

분노하고 마음의 쓰라림을 느낀다.


보고, 들으면서 공감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와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더 나아가서는 행동으로 표현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고 한다.


이것이 개인적인 범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로 스타트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더 크게는 분야별로,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공감하자.

스타트업의 대표들은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


배우고,

듣고,

나누고,

행동해야 한다.


직원들과의 공감뿐만 아니라

고객과의 공감이 스타트업의 성공을 이끈다.


오늘도 공감을 위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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