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쓰다'만' 쓰다

(주)클린그린 / Seonhong Chae



나의 시각은 매우 좁은 편이다.

딱히, 취미나 관심사가 내 일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글을 쓸 일이 다 회사에 대한 이야기다.


삭막하고 건조하게 들리겠지만,

대표라는 이름은

깨어있을 때부터

잠들 때까지...

가능하다면, 꿈꿀 때까지


회사 걱정과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직장 생활할 때는

공감하지 못했던 관리자/경영자의

삶은 달고 쓰다.


그리고 계속 쓰고 또 쓰여야 하는 역사이며,

모든 활동,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

회사를 위해 사용되길 원한다.


이런 나의 마음과는 달리,

직원과 경영진의 입장/관점이 다르기에

대화의 평행선을 달리기 일쑤다.


조금이나마 그 간격을 좁히는 글이 되길 원하며,

타이핑을 써 내려간다.


명목상, 외견상, 명분상은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으니까.



1) 쓰다: write about start up


나도 대학생이었고,

나도 직장인이었다.


처음부터 창업자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한 때는 직장에 애사심과 충성심으로 가득한

열정의 직원이었을 때도 있었고,

매너리즘에 허우적거리며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창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생 때였다.

그때는 친구들이 나의 꿈에 대하여

토익점수나 받으라고, 공무원 준비나 하라고

매우 일반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첫 창업은 사실 대학 2학년 복학하기 전에

폐수처리약품과 세제를 직접 제조하면서

경험하였다.


그때는 솔직히 쉽게 돈을 벌었다.

하루하루 노동한 그대로 통장에 현금으로 찍혔다.


'돈 버는 거 그렇게 안 어렵네'라는 착각 덕분에

지금까지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다만, 그때 배운 가장 소중한 배움은 "영업"이다.

거래처에 찾아가서 애걸복걸하기도 하고,

요래 저래 가격을 맞추려 밀고 당기기도 하고,

참 많은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면서

얼굴이 두꺼워졌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창업은 참 쉽다.

대신, 수성하기가 어렵다.

매출을 내고, 수익을 내고,

사람을 관리하고,

제품을 신경 쓰는 게 쉽지 않다.


2013년에 창업을 준비할 때,

참 많이 깨졌다.

아이디어에 대한 혹평과

회사라는 조직의 뒷배경 없이

세상에 홀로 떨어져 나와서

마주하는 현실은

막막함을 넘어 두려움이었다.


실업급여가 동나버리고,

그간 모아 온 통장잔고의 자릿수가 줄어들고,

나는 호구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여러 번의 이용을 당하고,

속 쓰린 좌절과 얼굴이 붉어지는 거절의 연속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을

붙잡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준비 없이 들이대기에는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뒤늦게 체감하게 되었다.


2014년 12월에 법인을 설립할 때,

뭔가 이뤘다는 착각을 하였지만

그것 역시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뀐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세무신고, 법무비용이 늘어나고,

나 혼자 존재하면서

나 혼자 대표인

아무것도 아닌 그냥 이름 뒤에

"대표"란 어색한 단어만 붙었을 뿐.


그렇게 1인 기업으로 시작하였고,

스타트업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별 볼 것 없는 창업자가 되었다.


법인등기부등본에

내 이름 석자가 쓰였고,

자본금 100만 원이 쓰였다.


사업자등록증을 발부해주는 담당공무원에게

잠시 스치듯 기억에서 사라질 회사 이름이 쓰였다.


존재는 하되,

아무도 몰라주는 회사가 탄생하였다.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름만 회사가 시작되었다.



2) 쓰다: 달콤한 쓴 맛


법인으로써 창업의 시작을 한 지 4개월 만에

자본금이 동나버렸다.


100만 원 가지고 그동안 버틴 걸 생각하면,

징하게 잘 버틴 셈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답이 없었다.


창업을 준비할 때부터

쓴 맛의 연속이었는데...


창업하고 나니 더 쓴 맛이더라.


얼마 안 되는 자금인데...

그조차도 회사 통장에 0원이 되는 순간,

진짜 앞이 깜깜하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더욱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때, 나에게 힘을 준 것은

바로 직장 생활할 때, 한 솥밥 먹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

200만 원!


내 허무맹랑한 꿈에 맞장구쳐주고,

이제부터는 내 꿈이 아닌 우리의 꿈이라고

의기투합했던 동료들이 응원을 해 주었다.


뻔히 다 아는 서로의 집안 형편인데...

우리 모두 흙수저에, 책임져야 할 가족이 딸린 몸들인데...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나를 지지해 준 동료들은 나의 두 번째 투자자이다.

가장 힘들 때,

나의 손을 들어준 소중한 파트너들이다.


200만 원은 단지 그 가치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투자자보다 더 큰 가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꺼져가던 열정에 기름을 붓는 돈이며,

신뢰라는 가치가 더해진 피 같은 돈이다.

절실함이 묻어있는 돈이다.


다시금 힘을 쥐어짜서,

정부지원자금에 도전하였다.


가까스로 서류 경쟁에서 통과하였지만,

멘토들에게 혹평을 받았고,

사업계획서를 전면적으로 다 수정하게 되었다.


3일 밤낮을 거의 새다시피 하며,

시장조사, 아이템 수정, 비즈니스 모델 변경,

마케팅 계획 수정 등... 모조리 다 바꾸었다.


이전 같으면,

좌절하고 멍~하니 초점 없이 하늘만 바라봤을 나였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빠르게 보완하고,

재정비하는 것은 자존심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아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의무감과 책임감이다.


그리고

하늘은 나의 세 번째 투자자가 되어주었다.


치열하고, 높은 벽이었던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회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쓰지만 달콤함이 있다.

바닥이 있어 딛고 일어날 수 있다.

위기 속에서 기회가 있더라.


그 맛을 처음 접하게 되면,

쓰다고 뱉거나, 쓰다고 투정하지 않게 된다.


그 너머에 단 맛을 찾아

쓴 맛을 삼키게 된다.



3) 쓰다: 스타트업의 사용법


그렇게 기사회생한 우리 회사는

기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교육과 네트워킹, 생산 인프라, 업계 전문가,

멘토링, 고객 설문/인터뷰 등

가능한 모든 시간을 투입하였다.


하나둘씩 동료들이 합류하고,

목표한 작은 성과들이 하나씩 달성되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도움을 주는 분들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만나주지 않았던 업체가

적어도 만나는 주는 장족의 발전을 가져왔다.


여전히 열에 일고여덟은

실패하고, 거절당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둘셋은 공감해주고,

응원해주고, 지지해준다.


여전히 궁핍하지만,

적게나마 매출이 생기고,

적절한 시기에 시드 투자도 받았다.


여전히 미흡한 제품이지만

작은 전시회에 참가해서 고객의 반응을 직접 체험하고,

보다 뚜렷해진 길이 나타났다.


여전히 가진 것이 많이 없지만,

아무것도 없던 회사에 장비가 늘어나고,

통장에 그래도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는 숫자가 찍히고,

바다 건너 해외에서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여전히 일이 많지만,

혼자가 아니라 시끌벅쩍하게

난상 토론하는 동료들이 북적거린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골머리 싸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창업 한지 2년 8개월 차가 되었다.

살아남아있다.

희망을 담은 미래를 꿈꾸는 수준이 아니라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는 중심이 생겼다.


여러 가지 지표와 숫자들이

우리의 비전과 목표에 근거로 사용된다.


우리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우리 회사의 뒷배경으로 사용된다.


우리의 시간과 땀들이

우리가 만드는 회사의 밑거름으로 사용된다.


경험치의 누적!

무언가를 실패했을 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는 법에 대한 하나의 경험치를 얻는다.

무언가를 성공했을 때,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방법에 대한 다른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스타트업은 선천적으로 약하다.

하지만 점점 얻는 것들이 누적되고,

깨닫는 것이 늘어나면서 빠르게 성장한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처럼

스타트업이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법을 터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족함 가운데 만족함을 얻는 방법을 알아내기도 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는 방법을 체득하기도 한다.

부족함을 서서히 메꾸는 방법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게 발전하고 성장해 간다.

제품도, 회사도, 직원도, 대표도

어제와 또 다른 오늘을 마주하게 된다.


스타트업이라는 회사는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4) 쓰다'만' 쓰다: ing형 삽질


그렇다고 늘 낙관적인 미래를 바라보는 건 아니다.

적어도 경영진은 최악의 상황도 늘 고민하고 있다.


중국 쪽에 지인들이 있어 첫 수출 타깃시장으로 준비할 때,

갑작스레 터진 "사드 배치 이슈"

급랭한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 간극은 좀처럼 좁아질 줄 모르고,

중국을 바라보던 회사들에게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의 난관이다.


웃으며 덕담 건네던 협력사에서

실제로 협업하면서 얼굴 붉히고, 책임소재 따질 일이 발생하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상치 못 했던 큰돈이 지출되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선뜻 결정 내리기 어려운 선택의 기로는 매일 우리를 기다린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동료들과 읏샤읏샤 한 마음으로 업무에 집중할 때도 있지만,

사소한 오해나 작은 실수로 마음 상하게 하는 상황도

늘 우리를 긴장시킨다.


처음 창업했을 때나,

지금이나,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샛별 보기 운동하며

뱃살이 늘어가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고 싶은 아들내미들과

육아전쟁으로 매일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일에 파묻혀 있는 것도 바뀐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그러한 현재 진행형을 쓰고 있다.

내게 주어진 상황 그대로만을 쓰고 있다.


사업계획서는 쓰고 지웠다가 다시 쓰고 있다.

수정하고 보완할 사항들이 늘 새로이 생겨난다.


계약서도 쓰고, 다시 쓰고, 다시 쓰고 있다.


제품을 써보고, 또 써보고, 또 써가며

확인하고 기록하고 있다.


쓰다'만' 쓰다.

여기에 덧붙여서

사실 이 글을 쓰는 진짜 숨겨진 본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쓰다'만' 휴가를 쓸 것이다.


4년째 없었던 휴가!

올해는 어떻게 해서든 2일 정도는

모든 것을 동료들에게 맡기고

가족과 휴가를 보낼 것이다.


대표가 무슨 휴가냐고?

이제 나태해졌냐고?

아니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던 것도,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가장 원초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나의 첫 번째 투자자인

사랑하는 가족 덕분이다.


가족의 희생과 응원,

지지와 신뢰가

현재의 내가 일에 미칠 수 있는

진짜배기 영업비밀이고 나의 경쟁력이다.


가족이 더 좋아하는 회사가

우리 회사의 사훈이다.


내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누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어떻게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나의 첫 투자자이자,

우리 회사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이 글을 통해


감사함과 사랑을 전한다.


죄인 된 마음으로,

빚진 마음으로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꼭 사업을 성공하고야 말겠다.


가족이 더 좋아하는 회사를 반드시 만들겠다.



추신:


이 글을 써놓고

저는 휴가 계획 짤 겁니다.

우리 동료들과 투자자분들은

잠시 저를 잊어주세요.


저 휴가 가려고...

미리 밑밥 까는 글입니다.


저 없다고 회사가 더 잘 돌아가면,

매우 감사할 겁니다~~!

#클린그린 #스타트업 #스타트업창업 #창업자 #창업가 #고민 #성장 #인사이트 #조언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로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