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에게서 배우는 스타트업(1)

조선 전기: 왕은 나라를 세우고, 우리는 회사를 만들었다.

(주)클린그린 / Seonhong Chae


초심을 가진 자 나라를 세우고,

초심을 잃은 자 나라를 잃는다.




(태조 이성계)


조선의 개국을 생각하면

우리는 태조 이성계를 떠올린다.


위화도 회군을 하여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던 군사적 쿠데타 또는 혁명에 대하여

굳이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드라마, 영화, 소설을 통해 자주 접했을 것이다.


이성계를 타고난 창업가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무장으로서는 이름을 날렸지만,

처음부터 조선 건국을 생각했던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왕으로 만들어진,

왕으로 세워진 느낌이 좀 있다.


사실 여러 전투에서 승승장구하고,

장군으로써 입지는 다졌지만,

그에게 부족한 점도 많았다.


그를 왕으로 이끈

핵심 조력자 둘이 있었으니

그들은....



1. 혼자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태조 이성계 

: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팀원들


정도전은 뛰어난 기획자였다.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과 목표가 확실했고, 

구체적이며 실행력이 뛰어났다.


스타트업의 모든 업무의 시작은 기획이듯,

그의 조선 개국 시나리오는 상당히 세련된 형태더라.


리더를 부추겨서 군왕의 길을 걷게 하는 설득력과

고려왕조가 아닌 조선 건국이 필요한 논리와 근거,

타이밍을 정확하게 캐치하는 순발력은 

이성계로 하여금 왕이 될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의 국가관은 민본(고객중심)이었고, 

고려의 말기에 부조리와 불합리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목소리에 피드백으로 국가 판을 흔들게 되었다.


또한 그는 어찌 보면 스펙 버프가 없는 사람이었다.

정도전은 서얼이었고, 

능력보다 출신성분과 가문의 후광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강한 동기를 가졌다고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정책은 

음서 폐지(연고 차별 없는 인재 등용)를 시행하였는데...

쉽게 말하면, 

흙수저에서 공명정대, 정정당당의 기회 제공을 하는 제도이다.


더불어서 그는 리더에 대한 견제이자 교육을 신경 썼다.

그의 컨설팅 시스템은 

"경연"이라 불리는데...


수시로 민심을 파악하는 피드백이자, 

임금을 교육하고, 

시스템으로 후임 양성을 계속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 하루 3번 2시간씩 신하에게서 교육을 받는 왕 -> 직원에게서 배운다

- 잠들기 전에 상소문을 확인(악플 확인) -> 고객에게서 배운다.


그리고 뛰어난 마케터가 있었다.

무학(천민 출신의 스님)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학(유교)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르는 방식을 지향하였다.


그런데... 스님께서 어인일로??


그는

고려 말기 불가의 잘못된 것을 직설하고,

폐해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을 일찌감치 알았다. 


어찌 보면 불가 입장에서는 배신자이겠지만,

어찌 보면 진심으로 불가를 사랑했기에

조선 건국에 앞장섰을 테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불합리와 부패에 대하여

바꾸려고 노력하였으나 쉽지 않았고,

때마침 새나라를 만드는데 

새로운 규율과 새로운 변화로 개혁하고자 했다.


더군다나 민간에 조선 건국의 타당성을

적극적으로 홍보 한 인물이다.


특히 당시 개성에서 한양으로 조선의 수도를 옮기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풍수지리"를 이용하여 태조 이성계와 백성들에게

한양 천도의 당위성에 대하여 설파하였고,

조선의 개국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었다.


더불어, 기존에 개성 주변에 있었던

개성의 인프라와 귀족들과 거리를 두며

한양에서 신진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제도를 재편성할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와 Co-founder들을 볼 때면, 

얼마나 팀원과 조직의 힘이 중요한지 엿볼 수 있다.



2. 탁월한 통찰력의 세종대왕 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너무나 좋아하고, 유명한 왕!


세종대왕!


물론 세종대왕은 창업자라기보단

조선을 발전시키고,

기틀을 단디 하였던 왕이다.


그의 경영능력을 

한 번 돌아보면,


1) 외국 문물을 도입

: 시장조사 및 네트워킹 구축


특히 중국과의 외부 교류와 문물 도입을 추진하면서, 

네트워킹도 강화하고, 트렌드에 민감해졌다.

북방민족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군사력과 외교력으로 4군 6진을 개척하기 이른다.



2) 과학/기술

: 핵심기술, 모방, 인재양성


외국 문물 중에서 우리에게 적용 가능한 기술들을

모방하고 더 나아가 자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기 애썼다.

더군다나 기술인력을 중시하여 장영실과 같은 인재를 발탁하였고,

자격루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재를 양성함에 있어 출신성분보다

능력에 비중을 둔 점에서 

당시 시대상황을 비추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3) 한글 창제(훈민정음) 

: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


백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되는 채널을

새로 구축하면서 고객의 목소리에 쉽게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상소문은 보통 유생들과 지방관리들을 통해

전달되는데 중간에 정보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 소통을 통한 의견 반영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CEO일수록 더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야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4) 집요한 내부인력 관리


황희 정승을 퇴직하지 못하게 하고

계속 부려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조말생, 최윤덕, 유의손, 박안신, 이직 등

유능한 신하들이 사직하고자 했을 때,

계속 사직을 허가하지 않고 부려먹었다고 한다)


황희 정승을 비롯하여 

너무나 고생한 신하들이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할 때마다,

"윤허하지 아니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세종대왕이 

동료들(신하)을 가혹하게 부려먹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알고 있는지...


세종 19년 ~ 24년까지 기록에 따르면,

세자(후계자)에게 업무를 좀 나누려고 할 때마다

황희 정승을 비롯한 신하들은 반대를 한다.

심지어 왕이 눈병이 심해서 업무를 보기 어려워서

서류 업무는 좀 세자에게 넘기자고 하니

그것도 반대하고 세종대왕은 계속 일을 한다.


신하들을 붙잡아 놓은 이유와 동일한 기준으로

자신도 업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의사소통도 특이점이지만,

자신도 그 기분 안에서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내부 고객들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추론날 수 있다.

(왕이라는 이유로 예외가 되지 않는 모습 멋져요)


사실 능력 있는 인재를 붙잡아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평가한다면...

나는 세종대왕님 "빠"일까?


그리고 집헌전 학자들과 많은 논쟁과

설득의 작업이 있었다는 점에서

고단한 인력관리를 이끌어갔음을 느낄 수 있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피곤한 왕이기도 하다.

강한 업무강도와 고압적인 리더십으로 끌고 갔다면,

어쩔 수 없이 리더를 따라 갔겠지만,

뒷 탈이 많이 있었을테다.


못 이기는 척하면서 세종대왕을 따른 신하들!

정인지, 최윤덕, 이순지, 이조우, 박연, 성삼문, 김종서 등


그들은 세종대왕의 목적이 

왕실의 번영이 아니라

백성을 애민하는데 있음을 알기에

고단한 길을 함께 걸었다.


그리고 사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안 하면 죽는다"가 아니라

"안 하면 더 귀찮게 한다"이다.


공포로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리드하는 스타일이랄까?

거기에 백성이라는 명분을 얹어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가는 

지독한 CEO라고 볼 수 있다.






잠시 이야기를 새자면,

세종대왕님은 즉위 첫 해부터 7년간 매우 힘들었다.

가뭄이 끊이지 않았고, 백성들은 초반에 나랏님을 원망하곤 했다.

거기에 몸이 그리 튼튼하지도 않았다.

실록에는 세종대왕님이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기록 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감안할 때, 

그분의 리더십에 경외심이 안 생길 수 없더라.




3. 시스템을 완성하다! 성종


세종대왕님의 경영능력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조선 전기의 또 한 분의 뛰어난 왕이었던

성종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성종의 가장 큰 업적은

경국대전의 편찬이다.


쉽게 말해서 법전인데

회사로 치면,

회사 내규 확립, 시스템의 완성이랄까?


비로소 윗대들의 고생과 노력을 

시스템으로 완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리더의 의지만으로 시스템이 구축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라의 법률의 총 집약과 

이에 대한 부수적인 세칙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은 담당 실무자들이

어마어마하게 고생했다는 뒷 이야기가 숨어있다.


특히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매출이나 투자 등의 

퍼포먼스가 있는 결과물이 아니기에

주목 받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실이 든든한 회사는

바로 이러한 업무들이 켜켜히 쌓여가는 회사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확인 작업과

과정 하나 하나를 되돌아보면서

문제점을 수정해나가는 업무가 태반인

시스템 구축은 회사가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기초작업이자 필수작업이다.


그리고 성종은 특히 

학구자적인 왕으로 유명하다.


배우고,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였고,

경연을 가장 잘 활용하고, 즐겼던 왕이기도 하다.


배움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잘 활용되고 있는지

확인 및 검토를 자주 하였다.


경국대전의 경우,

법전으로 편찬되었지만

실제로 백성들에게 활용되고 있는지

성종 본인이 수시로 확인했다고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회사의 정책과 방향에 대하여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시스템에 보완할 사항은 없는지 

꾸준히 살펴보아야 한다.


더불어 영업이나 경영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 큰 성장을 위한 배움을 가까이하여야 한다.



4. 관리를 잘못하면 한 순간에 폭망!

   : 연산군


이번엔 분위기를 좀 바꿔서...


연산군....


창업을 잘 해도,

잘 관리 못하면 망한다는 

전형적인 경고를 주는 인물이다.


연산군의 집권 초기 10년간은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의 시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대들로부터 받은 

조선이라는 유산이 빛을 발할 때였거든.


문제는 연산군이 말아먹었다는 거다.


흥청망청 이란 말은

경청하지 않고 좋은 것만 듣고, 망할 것만 듣는다란 뜻이다.


바로 연산군을 빗대어 딱 맞는 말이다.

오죽 듣기 싫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고


신원패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경고장을 모든 신하와 주변인들의 

목에 달아서 말을 못 하게 하였다.


그리고 소통의 부재!

강력한 왕권을 가지길 원한 이유는 

설이 분분하지만...


일단 어릴 적부터 엄마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고,

(울 엄마 억울하게 돌아가심! 꼭 복수할 거임)

아빠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아빠가 공부를 좋아하는데 나는 싫어!)

(아빠가 왕인데 피곤하게... 귀찮은 일이 많아!)


뭐 이런 추측성 이야기들이 있는데...

어쨌든 왕이잖아.


개인적인 사정이나,

사적인 원한도 있겠지만...


나라를 이끌고,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자리잖아.


근데...

스스로를 컨트롤 못 하더니

결국은 국밥 말아먹듯

다 말아드셨다.




창업을 하고,

발전을 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배울 점이 많으나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후계로 이어지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어버리는 것이 바로 경영이다.


왕의 리더십과

합이 잘 맞는 조력자들, 

백성들의 피드백,

운영 철학과 실천...


비록 오래전,

역사 속의 이야기들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창업자들에게,

그리고 여러 리더들과

동료들에게 

교훈을 준다.


다음번 브런치에서는 

조선 후기의 왕들을 살펴볼까 한다.


#클린그린 #스타트업 #창업자 #창업가 #마인드셋 #조언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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