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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서 배우는 스타트업(2)

조선 후기: 선조와 영조 그리고 정조를 통해 리더십을 배우다.

(주)클린그린 / Seonhong Chae / 18. 05. 14. 오후 5:38


임진왜란 하면

다들 이순신 장군에게 환호하고,

선조를 실책이 많은 임금으로 기억한다.


뭐...

나도 좀 아쉽게 생각하는 면이 많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몇 가지 중대한 실수와 행동들은

참... 상식 밖이다.



1. 선조를 통해 리더십을 경계한다.


우선 선조가 즉위하였을 때,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나름 왕권도 강화하고,

무난했다.


아니 오히려,

잘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이이, 이황, 류성룡, 이항복 등

한 번쯤 들어 봤을 봄 직한 든든한 신하도 있었다.


잘 나갈 수 있는 스타트업 같은 느낌!



그리고 거북선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미 임진왜란 전부터 거북선은 건조되어 있었다.


군대가 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당시 군대 편성이 정규군 위주가 아니라

전시에 편제에 따라 동원되는 형태였기에

급작스런 전란에 대응이 늦은 것이지...


제대로 일본과 붙었다면,

그리 쉽게 물러나지 않았을 전투력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조선군이 재정비된 이후,

일본군이 연전연패하며 후퇴한 점이다.

(물론 General Lee께서 보급을 끊어주셨기에 가능했지만)


여기까지 되짚어볼 것은

스타트업으로 비유하자면,

꽤 해 볼만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 리더의 상황판단 미스와

사적인 감정이입으로 망쳐진 사례이다.




뚜둥~~!!

외세 침략(임진왜란)이 발생한다.


물론 임진왜란은 일본의 상황에 의한

외부 리스크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리스크가 터져 나왔다.

이제는 수습을 해야 하는데....


경쟁사가 속전속결로 치고 들어왔다.

그동안 갈고닦은 치명적인 한 수로

먼저 시장 진입을 하였다.


멘틀이 붕괴되는 상황!


위기의 상황에 리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선조에 대한 평가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1) 선조는 정보 검증이 미흡하였다.


왜(일본)의 전국시대가 종결되면서

급성장한 군사력에 대한 우려가 보고 되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통신사를 보낸다.


문제는 3명의 보고자 중

2명이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였으나

1명의 안전하다는 보고에 손을 들어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하긴 전쟁을 대비하자니...

신경 쓸 것도 많고,

골치 아프겠지.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일이겠지,

반복되는 회의도 귀찮고,

그리고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을 거고.


듣고 싶은 쪽으로 듣고

넘어가버린다.


정확한 정보 조사와

검증이 안 되었다.


회사 대표의 업무 중에서

각종 미팅과 제안과 영업을 하다 보면

밀려있는 서류 작업과

결정을 하기 위한 검증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위해서

9가지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


그걸 생략하거나

축약해버리면....

도박이 된다.


설마~~ 혹시나~~

이런 식의 마음으로 일을 진행하게 되지.


팀원들의 의견들을 

꼭 다수결로 결정하라는 법은 없지만,

다수가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소수가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면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대표는 가장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니까.



2) 선조는 고객을 버렸다.


전략적으로 왕이 붙잡혀 

전쟁에서 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회사가 살아남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듯이

상황 상 궁을 버리고 때로는 물러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백성들에게도 그 위험을 알렸어야 한다.

일견 백성들에게 알리면 동요하게 되고

질서 있는 도망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백성이 있기에 왕이 있다.


비밀리에 도망하기 위해서였다는 의견도 있지만,

왜군의 길잡이는 한양 도피 이후부터 발생한다.


나라에 실망하고,

왕에게 실망하고,

자신은 살아야 하는 민초들이

왜군에 투항하여 앞잡이가 되는 시점은

명확하게 왕이, 국가가 백성을 버린 이후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하는 선조의 모습은 

리더로서 크나큰 허물이다.


앞장서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는 게 아니라

도망하더라도 후일을 기약할 수 있도록

백성들을 도피시키면서 가던가,

각지로 신하들을 보내서 의명을 모집하던가...


뒤늦게 멀리 도망가서 

한 숨 돌리자 한다는 짓이

광해군에게 왕위를 떠넘기는 모습은

멘틀 붕괴를 가져온다.

(이건 진짜 화나는 일!!)


왕자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의병을 모으라고 하는 타이밍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생각된다.


고객들의 클레임이 빗발칠 때,

대표는 도망가면서

다른 임원에게...

네가 수습해하는 꼴이다.


책임지지 않는 모습 정도가 아니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이 부담하게 된다.






3) 선조는 사적인 감정으로 큰 일을 그르치다.


임진왜란 중에

뒷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위기를 넘어갈 때 

선조의 모습은 더 가관이다.


이순신의 파직, 원균의 임명, 

칠천량 해전 패전,

전쟁 후, 논공행상에 불합리성 등


에휴...

절호의 찬스에 왜 이런 삽질을...;;;


이 때는 이순신 장군의 연승과 의병들의 집결,

명나라 군대의 지원과 왜군의 연패 소식이

들려올 때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파직과 원균의 임명은...

사적인 감정에서 우러나온

의심병과 질투심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혹시나 백성들이 따르는 이순신 장군이

딴마음을 품지는 않을까, 

백성들은 날 싫어하는데

이순신 장군을 저리 따르는 모습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 내린듯하다.


기록에 따르면,

선조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통제사 이순신이 

사소한 왜적을 잡은 것은 바로 그의 직분에 마땅한 일이며 

큰 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선조실록 93권 중에서 발췌-



사소한 왜적에게 쫓겨서 도망간 게 누군데...ㅡㅡ;;


회사 대표로 치면...

유능한 직원을 칭찬을 못 할망정

깎아내리고, 벌을 주는 

치졸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그러면 회사 관두지.

그런 인재가

뭣하러 충성을 다하나?


하지만 장군님은 내 상상 이상이더라.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7년 동안 

나라와 백성을 위한 충성심에 감탄한다.


선조의 질투심? 그리고 백의종군을 보면서

나라면... 그렇게까지 못할 거라 생각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장에 나가는 모습에

반해버렸다.


또한,

연속된 승리에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승리하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일기였다.


지금으로 치면 

블로깅, SNS에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고,

스스로 돌아보며 초심을 지키는 것이랄까?


내가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일기 같은 이야기를 남기는 이유도

벤치마킹한 거다.


잠시 나도 감정이 격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

이래 가지고 선조를 뭐라 할 자격이 있으려나.


팬심을 뒤로하고,

어쨌든....


선조는 사적인 감정을

나라의 공적인 선택에 적용하였다.


그 선택으로 인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죽음을 당해야 했다.





2. 영조를 통해 리더십을 돌이켜 본다


이번에는 영조의 이야기를 하자.


영조는 조선 후기에 최고의 성군이며,

애민(愛民)의 모범이 되는 사례이다.



1) 자기관리를 잘 한다.


특히 앉는 자리에 방석을 제거한 이야기가 있는데

자리가 편해지면 마음이 흐트러진다 하여 제거했다더라.


또한 자기 관리에 철저해서 

술도 끊고, 소식을 하였으며, 

조선 역대 왕 중 최고령이었다.


물론 붕당정치에 의하여 

노론에 약간 치우친 면이 있지만,

(노론 덕을 본 과거 전례가 있다 보니...)

탕평책을 시행하여 한쪽으로 기울어져가던

붕당정치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힘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세자 이야기를 통해

영조를 엄하고, 꼰대로 보는 경향도 있는데...


어찌 아버지로서 아들을 뒤주에서

죽도록 하는 상황이 마음 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도세자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이뻐하였으며,

조선 역사상 가장 이른 나이에 

세자로 책봉하였을 정도로...


현대식으로 보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후계자 교육에 들어간 케이스랄까?


그런데 그 이후,

기록에 따르면...


세자는 공부하기를 싫어하였으며,

과식을 즐겨하였다고 전해진다.


영조가 소식 주의자라는 점과

공부하기를 즐긴 왕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세자 책봉한 것을 후회하였을지도 모른다.


기대가 컸기에,

강압적으로라도 공부시키고,

바꾸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세자가 더 엇나갔을 수도 있다.



2) 예외는 없다.


그러다가...

세자가 사고를 치고 만다.

살인을 하였다.


왕이지만,

엄연히 국법이 있고, 

살인죄를 저지른 아들이다.


영화에서는 

유아인의 멋짐에 넘어갈 수 있겠지만,

후계자라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점을 유야무야 넘어가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을 어떻게 따르게 할 것이며,

백성들을 어떻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아들이더라도,

잘못에 대한 죄는 치루어야 한다.


삼국지의 읍참마속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인정에 의해 움직이는 결정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에 의해 예외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더군다나 매우 가까운 사이더라도

더더욱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무자비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절대적으로 이 부분에서 

난 영조를 동의한다.



3)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정조는 영조의 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실 영조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정조는 영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조와 정조가 나라를 다스릴 때의

기록들은 얼마나 두 왕이 백성들을 

생각했는지 알게 해준다.


정조가 기록으로 남긴 말들은

성군으로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백성이 배가 고프면, 내가 배가 고프고

백성이 배가 부르면, 내가 배가 부르다."


"나는 소설보다 상소문이 더 좋다."


또한 정조는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방에 편액을 걸어놓고 매일 일어나고, 잘 때 확인하였다고 한다.


이는 아버지의 복수는 기억하되, 

지금은 탕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을 이입하지 않았다.


영조에서 정조로 이어지는 정신은

영조가 왕으로서는 괜찮았지만,

아버지로서는 좀 아니었던 점을 

보완하지 않았나 싶다.


사도세자의 건은 너무나 엄한 영조의 성격과

과도한 기대로 인한 부작용이었을 테다.


그리고 아들이 죽은 후,

영조는 정조를 제대로 후계자가 되도록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을 테다.


그 결과,

후계자로서 반듯하게 성장한

정조는 영조에 이어 성군으로 기록되는

올바른 리더가 될 수 있었다.





임금님들도 완벽하지 않다.

리더들도 완벽하지 않다.


성격이 괴팍할 수도,

선택을 잘 못할 수도,

편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대로 멈춰있는 게 아니라

앞서 나아가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하고,

리더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절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이다.


늘 기억하자.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자.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움을 삶에 녹여가기가 쉽지 않다.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


역사를 통해 

선현들에게서 (주)클린그린이 나아갈 길을 찾아본다.


#클린그린 #스타트업 #창업자 #창업가 #마인드셋 #조언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하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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