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에게서 배우는 스타트업

세계 역사상 최대 영토를 정복했던 영웅!

(주)클린그린 / Seonhong Chae


이전에 브런치에서 조선의 왕들을 통해

스타트업 창업자가 배워야 할 점들을

정리하였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이니,

잠시 세계사에 관심을 가져볼까 한다.


특히나 거대 제국을 세웠던

동양의 정복자이자,

기존 세계관을 뒤엎었던 왕이었던


칭기즈칸을 통해 스타트업을 이야기해 보자

 


광활한 땅에 말발굽 소리는

흡사 지진과 폭풍을 몰고 오듯이

세상을 흔들리게 하였다.


누군가에게는 동쪽에서 온 악마였고,

누군가에게는 북쪽에서 온 약탈자였다.


그가 정복한 땅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었고,

그의 시대는

짧은 시간에 세상을 뒤집은

혁명의 순간이었다.


테무진!

우리는 그를 칭기즈칸(또는 징기스 칸)이라고 부른다.


몽골 초원의 지배자에서

동서남북으로 뻗은 유라시아 대륙의

절대자가 되었던 왕!


처음은 작은 부족에서 시작하여,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새로운 역사를 쓴

스타트업의 멋진 표본이다.


그를 뒤쫓아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는지

정리해 보자.




1. 야생성을 잃지 말 것!


1) 헝그리 할 때, 가장 날카롭다.


몽골이라는 나라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울란바토르가 수도라는 정도랑

목축산업이 주요 산업이라는 점,

허르헉이라는 음식 정도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유목민의 삶을 고집하는

인구가 많은 그들은 

어느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이동이 일상인  민족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거주하지 않는다.

머물러 있기보다,

새로운 풀과 물을 찾아

떠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변화에 민감하다.


야생의 환경에 익숙해지면

지형에, 날씨에, 전세에 민감해진다.


이민족을 상대하고,

다른 지역을 전전하다 보니

사소하게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빠르게 파악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야생은 헝그리하다.


헝그리하다는 것!

부족하다는 것은

항상 날이 선 상태로 

유지시키는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온다.


신경이 곤두선 야생동물의 사냥 직전과 같은

위험함이 칭기즈칸의 군대가 더욱 강하게 보이도록

적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칭기즈칸은 항상 굶주려있는 

전사와 가깝다.


정복전쟁을 통해 많은 전리품과

승자로서 정착할 수 있었지만

영토 확장을 위해 계속적인 출정을 반복한다.


18년 동안 칭기즈칸은 동서남북으로 

직접 출병하여 진두지휘한다.


현장을 직접 뛰는 최전선의 전사는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다.


항상 칼은 날이 서리게 벼려있고,

말은 언제든지 달릴 수 있도록 준비되어져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진군할 수 있는 기동력!


당시 몽고군의 송곳니같은 날카로움은

극한으로 끌어올린 기동력이었다.


야생은 자신이 가진 최대 장점을 살려

살아남는 것이고, 승리하는 것이다.




2) 무뎌진 이빨은 무섭지 않다.


몽고군이 승승장구하는 시절에

꽤 강적이라고 볼 수 있는 나라들이 있었다.


서아시아의 호레즘 제국,

이슬람의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

북쪽의 러시아 공국,

당시 유럽 최강의 헝가리/폴란드와 유럽연합군 등


경쟁자로서 후들후들한 스펙을 가진

군대들을 계속 격파해 간다.

 (물론 칭기즈칸 이후에 정벌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후대 칸들의 정복전쟁이기에

칭기즈칸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면면히 살펴보면,

그 시대의 강자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는 전쟁을 하고 있었고,

몽고군은 빼앗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키는 쪽이 공격하는 쪽보다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인데

어떻게 몽고군은 연전연승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돌아갈 길이 없었다는 점에서

지극히 절실한 군대였다고 보인다.


몽고군의 특징은 

군장(군인들의 짐)을 최소화하여

기동력을 높였다는 점이다.


그럼 식량이나 필요한 물품을 어떻게 

조달하였냐면 점령지에서 빼앗았다.


머나먼 길을 원정 온 그들이

승리하지 못하면,

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절실함이 

그들의 전투력을 배가 시켰다.


당시 호레즘 제국이나 바그다드는

무역을 통해 물자가 매우 많았다.

러시아 공국은 침략자의 손이 닿지 않은 땅이었으며,

유럽연합군은 최강이라는 중기병의 위용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신들이 유리한 지형에서

그들은 패배하였다.




특이한 점은

원나라의 성장 속도만큼 

빠르게 세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한족과 융화되고, 문화와 관습을 따르며,

안주하기 시작하면서가 아닐까?


원나라 황실은

지배자로서 누리는 삶은 

향락과 방탕함으로 이어졌고,

이전에 날카로웠던 칼과 화살은

창고에서 녹이 슬어갔다.


백성들은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운동들이 각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야금야금 그들의 지배력을 약화시켰다.






2. 칭기즈칸은 다양성을 좋아해.


칭기즈칸이 정복전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19인의 영웅들이 항상 칭기즈칸을 따라다녔다.


그들은 용맹하였고, 지략에 뛰어났으며,

산전수전을 함께 이겨낸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19인의 용사를 살펴보자면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색목인, 아랍인, 출신성분이 낮거나 귀화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칭기즈칸의 대장군들로

활약을 하였다.


생김새와 출신, 행동양식은 달라도,

그들은 제국을 만드는데 하나의 힘으로 뭉쳤다.


무력뿐만 아니라 지략에서도 좋은 예가 있다.

칭기즈칸의 옆에서 전략을 담당한 사람! 

바로 야율초재. 

그는 거란 황실 출신이었지만 

칭기즈칸 이후로도 30여 년간 재상으로 활약했다. 

오직 정복만을 알았던 몽고인들에게

식량 생산과 세금, 지배의 방법을 알려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타트업은 항상 인재에 목마르다.

초기에는 능력 있는 인재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하다 보니 어느 정도 연고주의가 

적용된다.


하지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인력풀 바운더리에서 벗어나서

다양성과 능력 있는 인재를 찾아 합류시켜야 한다.


칭기즈칸의 멤버 구성의 원천은 관용이었다.

칭기즈칸은 항복한 적에게 관대하여,

회유와 포섭을 권유하였으며,

투항한 적은 심복으로 삼았다.


조직 내에서 

꼭 나와 잘 맞는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성향이 다르고, 

성격이 안 맞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해 갈 때,

우리는 더 많은 의견과 생각을 얻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칭기즈칸이 

그래서 얻은 것이 

중국에게는 화약을, 

고려에게는 말과 활을, 

아랍에게는 과학과 정보를 얻었기에

더욱 강대할 수 있었다.


후일담이지만 

칭기즈칸의 5대손인

쿠빌라이 칸이 죽고 난 뒤,

원나라는 

한족에 대한 차별정책으로

너무 많은 지역적 봉기를 유발하였고,

국력이 빠르게 소진되어갔다고 한다.


고위직을 모두 몽고인으로 대체하였으며,

이로 인해 타민족의 민심이반이 커졌다.


마치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포지셔닝이 되었을 때,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주의로 

낙하산이 경영진으로 내려오면서

회사가 기울어 가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3. 확실한 마케팅


칭기즈칸은 

굴복하지 않는 적을 

무자비하게 몰살시켰다.


그래서 칭기즈칸의 적들은 

공포심에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문은 전쟁 승패보다 빠르게 전해지면서

싸우다 몰살하기보다

투항해서 같은 편이 되는 선택을 강요하였다.


몽고군이 온다고 하면,

다들 벌벌 떨고, 짐 싸서 도망가기 바쁘다.

아니면...

몽고군을 환영하고, 성문을 열어주든가.


사실 몽고군이 아무리 기동력이 뛰어난 군대였다고 하여도

그 넓은 땅과 수많은 민족, 적들을 다 이겼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실제 전투의 횟수보다 

투항의 횟수가 더 많은 점에서

뛰어난 마케팅으로 직접적인 손실을 줄이고,

오히려 군세를 더 확대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키워간다.




4. 강한 동기


칭기즈칸은 어린 시절부터

우여곡절로 고생을 많이 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독살되기도 하고,

전쟁의 포로가 되기도 하고,

아내를 적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싸우기도 하였으며,

내부적으로도 칸이라는 지위를

호시탐탐 노리는 위협을 극복하였기에

입지적인 인물로 소개된다.


이러한 

아슬아슬했던 환경과

아팠던 시간들을

칭기즈칸은 강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배경들이

자포자기하고, 타협할 수 있는 근거로 쓰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배경이었기 때문에

더 악으로, 깡으로, 절실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어두웠던 환경의 핑계를 대지 말자.

과거의 이유를 들먹이지 말자.

부족함을 근거로 피하지 말자.

결핍의 논리로 포기하지 말자.


어두웠기에 빛을 향해 나가야 할 목적이 생기고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달려야 할 이유가 되고

부족함은 겸손과 배움을 통한 채움을 깨닫게 해 주며

없음은 오히려 내게 힘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


저 넓은 땅을 갈망하라.

저 산 너머의 달콤한 열매를 탐하라.


강렬한 동기는 

확실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5. 동고동락


훗날 쿠빌라이 칸에 의하여, 

수도가 몽골에서 중국으로 옮겨지면서 

거대 제국 원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칭기즈칸 이후, 4대에 걸쳐 초원 생활을 하였다.

(몽골 전통 가옥 게르)


당연히 초대 왕인 칭기즈칸은 

궁궐이 아닌 초원의 천막(게르)에서

병사들과 함께 생활을 하였다.

(물론 좀 더 크고, 더 갖춘 천막이었지만...)


이에 대하여 몇 가지 가설은

몽골 유목민의 생활양식이기 때문이다,

정착, 거주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다,

국가의 기틀이 다져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의 여러 의견이 있는데...


전우들이 불편한 삶을 감당하고 있고,

언제든지 적이 공격해 올 수 있고,

급하게 추격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전시상황의 연속선 상에서

쉽게 등 따시고, 안전한 곳에 숨어있을 위인은 아니었을 테다.


오히려 쉼 없이 말을 달리고,

전우들과 마유주를 밤새 퍼마시기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말린 고기를 물에 불려 질겅이며,

모래바람을 마주하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위인이다.


정복전쟁(또는 통일전쟁)을 하기 위해

달려야 할 곳들이 너무나 넓었고,

싸워야 할 적이 너무나 많았다.


단지 명령만 내려서 이룰 수 있는 업적이 아니다.

장수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장수들과 함께 이루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전장을 누비며,

승리의 달콤함을 공유하였고,

그들과 도망 다니기도 하고,

그들과 굶기도 하고,

그들과 축배를 들기도 한다.


그것이 초기 창업자의 멋들어진 삶이었으리라.

그것이 칭기즈칸의 전성기(클라이맥스)였으리라.





칭기즈칸을 좀 미화한 감은 있지만,

오직 내가 배워야 할 좋은 점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향을

역사 속 칭기즈칸에게서 전달받는다.


바통 터치!

자! 말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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