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풀의 조직문화'라고 쓰고 그냥 회사 자랑

밥풀도, 바푸리도 아닌, 바풀

바풀(Bapul) / Mihyang Eun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작년쯤 '스쿱미디어'라는 곳에서 '나는 스타트업하는 불효자식입니다'라는 기발하면서도 서글픈 문구가 들어가는 티셔츠며 굿즈 등을 기획/제작해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공감을 얻고 이슈를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스타트업은 일도 많고 미래도 불안하고, 뭐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그런 점에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좀 좋습니다.


입사지원을 하기 전에 물론, 어떤 서비스를 만드는 어떤 회사인가를 가장 먼저 봤어요.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한다'든가 '탄력근무제', '자율휴가제', '근무시간 10:30~19:00'가 입사지원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날 나는 하루에 두 번 회사를 갔습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면접을 보러 오후에 한 번, 두 번째는 입사 관련 협의를 하러 저녁 8시에 한 번. 그런데 놀라웠던 건 저녁 8시에 회사에 다시 갔을 때 회사에 남아 있었던 팀원은 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대표와 당시 신규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던 기획자 단 두 명뿐이었다는 거예요. 개발자들이 일하던 공간은 불이 꺼진 채 깜깜했는데 그 광경은 내게 실로 경이로운 장면이었습니다. '아, 이게 정말 가능하구나!'


'그렇다고 해도 막상 현실은 다를 수 있겠지'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회사에서는 기본 업무시간이 있되 팀원들이 업무 일정과 컨디션과 개인 일정에 따라 자율성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볼 일이 있으면 일찍 출퇴근하기도 하고, 오전에 볼 일이 있거나 늦잠을 잤다면 늦게 출퇴근하기도 합니다. 다른 팀원들은 그 이유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한 건 첫째, 각자 맡은 일에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스스로 관리하기 때문이에요.


보통의 조직은 누구 한 사람이 농땡이를 치면, 열심히 하거나 능력 있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 몫까지 대신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업무 영역과 프로젝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자신의 업무는 자신이 해야 합니다. 누구 한 사람만 눈에 띄게 농땡이를 칠 수가 없는 거죠. 내일의 일은 어차피 내일의 내가 해야 하고, 내가 제때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협업하는 팀이나 팀원의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게 가능한 두 번째 이유는,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고 회사가 정시퇴근을 권장하기 때문입니다.


몇 시에 출근하건 야근하는 게 일상이라면, 모두가 늦게 출근하거나, 혹은 괜히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 없거나 할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정해진 시간 내에 집중해서 업무를 마치고 제때 퇴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도 가능한 겁니다.


공도는 우리 회사의 서버개발자입니다. 특히 최근 신규 출시한 바풀공부방의 서버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서버 쪽은 일반적인 회사의 업무시간에 딱 맞춰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점검은 이용이 가장 적은 시간에 해야 하니까 남들 잘 때 일해야 하고, 문제는 이용이 가장 많은 시간에 발생하니까 모니터링은 남들 쉴 때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역시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매여서 일하기보다는 알아서 스케줄 관리를 하고, 대표 및 팀원들 역시 그 점에 대해서 이의를 갖지 않습니다.


보통의 회사라면, 출퇴근은 남들과 똑같이 하고 퇴근 후나 휴일에 추가로 해야 하는 일들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지만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아요.


아래는 웹개발자 제이크의 메시지입니다.


제이크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팀원인데요,


들어오자마자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고 새로 만든 서비스의 관리자 계정을 만드느라 바빴어요. 글을 남긴 시각을 보니 야근을 했네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다음날 쉬겠다고 슬랙에 메시지를 남겼는데, 누구도 '제이크, 아프지 마요 ㅠㅠ', '제이크, 힘내요'와 같은 살가운 위로는 건네지 않았지만 제이크는 일곱 알의 알약을 선사받았습니다.


물론, 가능하면 휴가 계획은 미리 공유해달라는 정도의 가이드는 우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회사를 쉬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렇게 컨디션 문제로 회사를 쉴 경우가 더 많잖아요. 컨디션이 언제 나쁠지, 내가 언제 아플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고요. 그래서 회사가 팀원의 휴가에 대해서 하나하나 따지고 묻고 누군가가 결재하지 않습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강관리도 능력'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곧 '아픈 건 무능력'이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건강관리를 할 수 없는 업무 환경이나 분위기의 조직에서 '건강관리 =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곳에서 일하는 팀원들은 정작 알아서 건강이나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없으면서도 아플 땐 죄책감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겠죠.


저도 한때는 감기만 걸려도 SNS에다 아프다고 징징대기도 하고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웬만하면 남 듣는 데서 아프다 소리는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된 건 아무래도 '아픈 것 = 자기관리 실패'라는 데 의식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출퇴근이 얼마나 탄력적이냐, 정말 휴가가 필요할 때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느냐만 보고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다, 나쁜 회사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회사의 다른 팀원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가능하다는 건 적어도 회사가 기본적으로 팀원들을 신뢰하고, 팀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업무를 계획하고 통제하면서 성장해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저는 회사에 있는 동안 집중해서 일하고, 그 후에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기 전 시작했던 계간지 만드는 일도 틈틈이 하고 있고, 회사를 다니기 전부터 해왔던 운동도 꾸준히 다니고 있죠. 우리 회사가 이런 회사입니다.


바풀이 뭐하는 덴지 궁금하다면 about.bapul.net으로 한 번 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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