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차 스타트업의 지난 이야기

그리고 흔하디 흔한 새해 다짐

텐핑거스


브런치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만 적겠다고 다짐을 해놓고, 막상 적으려고 보면 회사 일 밖에 적을 게 없다. 사업을 시작하고 내 삶은 서울데이트팝-텐핑거스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올 2015년을 회고하며 단순히 1년보다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을 돌이켜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년 6개월 정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한해 한해 '나의 마음가짐'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돌아보면 정말 흥미롭다.


커플들을 위한 데이트코스 추천 앱, 서울데이트팝. 저는 이런 앱을 만들어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개발자들과 창업을 했습니다. 혹시나 궁금해하실 것 같아..(사실은 PPL..?)


2013, 앱을 만드는 것 자체가 좋았던 개발자들

2013년 가을께 처음 서울데이트팝 앱을 개발하고 출시할 때만 해도 나는 학생 마인드가 강했고 팀원들은 다니던 직장이 있었다. 우리 모두 개발자, 디자이너라는 출신 성분 때문인지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에 몰두하는 그 시간 자체가 행복했다. 시장 반응이 좋았고,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플랜이나 대단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기에 많이 서툴렀다. 많은 멘토, 투자자들에게 쓴소리 섞인 조언을 많이 들으면서 조금씩 다듬어지고 맷집도 길러졌다.


2014.07. 쿨리지코너 인베스트먼트로부터 4억 투자 유치.

2014, 투자를 받으며 엔진을 달았으나 발목을 잡았던 학업

7월쯤 투자를 받게 되면서(관련 기사)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4학년으로 복학한 시점이었기에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그때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훨씬 빨리 도달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 만큼, 그 당시의 나는 반쪽짜리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데이트팝은 정말 조악했던 첫 버전에 비해 좀 더 보기 좋고 그럴듯한 구색을 갖추고, 컨텐츠도 탄탄하게 다져갔다. 그리고 점차 '데이트 앱 하면 서울데이트팝' 이라는 명제를 사람들에게 알려가기 시작했다. 이때쯤부터는 유사 서비스나 경쟁사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들려왔다.


2015, '지금 성공하지 못하면 내일 당장 길바닥에 나앉는다'는 생각, 막막하지만 확신이 생겼다.

2015년을 요약해보면
-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배웠고,
- 데이터 보는 법을 배웠고,
- 영리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법과,
- 시스템을 만들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 올라와 대학 생활을 한 이후로 가장 안정된 삶을 살았다. 잠도 매일 6시간 이상 잤으며, 매일 12시간 정도 일을 했지만 어쨌든 일요일 하루 정도는 푹 쉬는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적어도 '다음 달은 뭘로 생활비를 벌지?’ 식의 고민을 하던 학생 때보다 나은 수준의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왔다.

단, 회사가 투자금으로 1년 반을 살아왔기 때문에 매달 줄어가는 회사 통장 잔고를 보며 불안했다. 또 당장 한 달 후에 무슨 일이 터질지, 일주일 후에 무슨 미팅이 잡힐지 몰라 친구들과 약속 하나 잡기에도 조심스러운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래도 분명했던 건 조금씩 흔들리기는 하지만 우리 팀원들과 함께 탄 이 배가 목적지로 다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10fingers 단체 사진. 이들을 빼놓고 어떻게 2015년의 나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 이전의 사람들도 한명한명 나에겐 정말 소중하고 감사했다.

2015년에는 텐핑거스라는 팀 자체가 회사로서의 모습을 갖춰갔고 서비스의 몇몇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상반기에는 개발팀이, 하반기에는 컨텐츠팀이 세팅되었다. 경기, 부산, 대구 지역 확장을 했고 시즌별 전략에 따라 서비스 지표가 전년의 세배 이상 올라왔다. 데이트 취향 기반 장소 추천 서비스 등 향후 계획과 관련된 몇몇 베타 앱을 출시했다. 네이버, 카카오, 캐시슬라이드 등 유의미한 외부 제휴가 성사되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사람도 많이 드나들고, 핵심 인력들끼리 의견 충돌도 있었으며, 말 그대로 삽질과 방황도 했고, 열심히 추진한 일에서 쓴 실패를 맛보기도 해야 했다.
그래도 비 온 뒤의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서로를 다그치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며 한 해를 살았다. 이 과정에서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팀원들도 잘 따라와 줬기 때문일 것이다.


2016, 원숭이띠의 해가 왔다.

안녕 병신년, 나의 해가 왔구나. (나는 원숭이띠다.)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다짐이 있다. 사실 일 시작하고 성격이 매우 괴팍해졌는데 그 이유인 스트레스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점과, 사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시야가 좁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한 한계점이었다. 이 부분을 올해는 어떻게 더 극복해나갈지가 중요할 것 같다.


1)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갈 거다.
예전에는 문제를 잘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내가 한 시간을 아끼면 팀 전체 효율이 두배 세배로 올라간다는 것을 늘 명심하자.


2) 조금 더 성숙한 나를 만들자.
매년 다짐한다. 항상 겸손하고, 감사해할 줄 알고,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자.

3)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되자.
나이를 먹는다고 고리타분해지기는 싫다. 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삶을 살자.


10fingers는,


1) 돈을 벌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고 우리 스스로도 생각하는 올해의 가장 큰 미션은 수익화다. 어쩌면 너무  돌아왔나, 너무 어렵게 왔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간 우리의 행보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것 없다. 늘 그래 왔듯이 이걸 성공하지 못하면 내일 죽는다는 생각으로 임할 거다. 올해는 돈을 벌 거다.


2)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대단한 일을 한다.

우리 팀의 장점은 답답할 정도로 본질에 충실한다는 점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무언가, 허세가 없다. 또 모든 것이 오픈되어 있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혹은 눈 가리기 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다. 갓잖은 허세도, 허황된 꿈도 없다. 그저 묵묵히 한 발 한 발 밟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우리 팀을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대단한 일을 한다.'고 표현한다. 가능하다고 본다. 2016년은 텐핑거스에게 또 한 획을 긋는 한 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워커 홀릭도 아니고, 또라이도 아니다. 이렇게 당찬 포부를 글로 적어놓고 막상 남들 다 노는 공휴일이 되면 '나도 너무 놀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오랜만에 모임에 나갔다가 갑자기 회사 일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할 땐 욕이 절로 나오고, 각자의 길에서 갓 입사한 동갑내기 친구들이 겪는 고충을 들으며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렇게 똑같은 삽질을 하고 있을 것 같다.


2016년이 끝날 때 이 글을 다시 보며, 계획한 대로 얼마나 살았는지 점수를 매겨보고 싶다.

Happy new year !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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