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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행이 시작된다 : 서서울예술교육센터 TA 윤윤상작가

ㅡ더 즐겁고 다 행복한그렇게 여행이 시작된다.-서서울예술교육센터 TA 윤윤상작가#서서울예술교육센터 #윤윤상#TA #작가‡ Nice to meet you, Artist meets you !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예술 활동. 서울문화재단의 15개 창작공간 입주작가들을 소개합니다.보물은 발밑에 놓여있거나 고개를 들어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이렇게 멀리 떠나와서야 알게 되죠.-서서울예술교육센터 TA 윤윤상 작가 작업노트 중서서울예술교육센터 TA 윤윤상 작가그의 이력은 조금 특별하다. 얼핏 들으면 어느 여행가의 이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6개월 아시아의 곳곳을 여행했다. '예술프로젝트'라고 했지만 그의 일상은 여행이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뜬금없이 가구를 팔았다. 꽤 잘 팔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다 다시 불현듯 자신의 여행 가방을 뒤적여 그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서서울예술교육센터 TA로 활동 중인 윤윤상 작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관광과 거주사이의 여행어떤 경향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고 싶었어요. 모든 것을 제로(zero)에서 시작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무엇과도 상관없이 내가 오롯이 생각하는 문맥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싶었습니다.그가 학교를 졸업하며 '여행'이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결심한 이유였다. 그의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같은 루트를 두 번 도는 여행이었는데 한번은 가이드북과 같은 기존 여행 정보를 이용하여 관광객들이 흔히 가는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고, 한번은 여행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2~3개월씩 한곳에 머무는 여행이었다. 좀 오래 머무는 곳에서는 아예 집을 빌려 생활하고, 현지 아르바이트도 하고, 인연이 된 주민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들의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해보기도 했다.태국 치앙마이 게스트 하우스 전시 가능한 곳에서는 전시도 했다. 태국 치앙마이 몇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여행 중의 전시다 보니 현지에서 수집된 물건이나 재료로 구성을 해야 했어요. 재밌게도 처음에 관심이 가는 것들이 화려하고,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이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적인 것들에 더 의미를 두게 되더라고요."치앙마이에서 수집한 첫 아이템은 화려한 꽃이었다. 하지만 점점 모이는 물건들은 샤워타월, 물컵, 색종이 등이었다. 그렇게 전시된 이야기는, 감각적으로 들어오는 강렬하고 표면적 이미지를 쫓는 여행에서 시간과 함께 일상에 이야기를 담아가는 거주의 여행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국기, 정체성과 이상향어릴 때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지나면서 보았던 하늘에 날리는 알록달록 다양한 국기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아마 그 이미지 때문에 국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성조기를 테마로 한 작업들윤작가는 특히 국기에 관심이 많다. 미국 유학 시절 이방인으로서 작업을 고민하며 '현지인이 스스로 보지 못하는 그들의 문화를 이방인의 눈으로 보여주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조기를 모티브로 작업하기도 했다. 실내에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라는 점, 즉 ‘바닥’이라는 문화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성조기의 ‘별’과 ‘바닥’이라는 전시공간을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또한 210개의 전 세계 국기 안에 담겨있는 상징들을 해체하여 개별 요소로 만들어 보았다.“국기를 해체하다 보니 의외로 상징이 몇 개의 카테고리로 단순화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국기가 그 나라를 대변한다기 보다는 어떤 이상향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렇다면 국기를 만드는 작업이 본인의 내적 욕망을 이야기하는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윤작가는 올해 국기에서 뽑아낸 72개 정도의 그래픽을 오픈하고 참가자들은 그 안에서 사진의 이상향을 담은 국기를 조합해 내는 작업으로 서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650여명의 다양한 부류의 아이들을 만났다.650개의 상상 속 공동체와 그 이상서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윤작가가보고 싶은 나라, 다녀보고 싶은 학교,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게 함으로 나라. 국경,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타자, 소수자, 어린이의 표현으로 보고 싶었습니다.인터뷰가 있던 날, 서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는 일 년 동안 탄생한 650개의 국기 중 12개가 '환영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이었다. 전시된 국기들 속에는 상상 이상의 메시지들이 담겨 있어서 흠칫 놀랐다.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가정 아이는 축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말을 안 해도 되기 때문에 새가 되는 기분이라며 아이의 국기에는 날아가는 독수리 상징이 담겨있었다. '방탄소년단'이 춤을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고 싶은 아이는 일곱 개의 별을 자신의 국기에 담아 놓기도 했다.상상의 공동체를 담은 국기들국기는 그래픽 작업 뿐 아니라 실제 국기 형태로 만들어져 서서울예술교육센터 건물 외관에 걸어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인터뷰를 위해 센터에 도착했을 때 건물에 빼곡히 걸린 낯선 12개의 국기를 보며 무슨 국기가 저렇게 걸려있나 의아했었는데 전시 작품의 일부였다."아이들 하나하나가 어떤 보이지 않는 상상의 공동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기도 정상회담의 국기처럼 화려하게 제대로 만들었고, 전시구성도 마치 정상회담 테이블과 같이 해 보았습니다."다음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있기.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며 그가 인터뷰 초반에 보여준 여행 사진 한 장이 계속 기억났다.윤윤상 작가가 여행중 찍은 사진어느 사원에 청소하고 있는 여인의 사진이었다.이 사진을 보여주며 작가는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 사원을 바라보는 사람과 사원의 한편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 사이를 보여주는 사진이었다.저는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시간은 그냥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 맡기는 시간이죠.오랜 여행과 약간의 침묵 후 윤작가는 이제 막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오래 봉인되었던 여행 가방에서 이제 막 툭 튀어나온 이 이야기는 그가 이야기한 맡겨진 다음의 시간위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며 '둘러보기'와 '머물기'의 여행을 해나갈지 궁금해진다.다음이야기를 준비하는 윤윤상 작가글  시민기자단 홍은사진제공  윤윤상디자인  이한솔#서울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 #서서울예술교육센터 #TA업무 #직무정보 #공채정보 #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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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몰라요

처음 창업팀에 조인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이전에 스타트업 두 군데에서 일해본적이 있었지만, 둘 다 인턴이나 직원형태로 짧은 기간 동안만 일했기 때문에 공동창업자에게는 어떤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돈을 넣으라니까 돈을 넣으면 되는거겠거니...얼마까지 가능하세요?500까지는 가능할 것 같은데요...그럼 런칭하기 전에 하셔야 하니까 지금 바로 넣어주세요.???이거 뭐 경매도 아니고 그렇게 투자금을 넣었다.+아직도 7월 1일 처음 귀국해서 사무실을 방문했던 날이 기억난다.수서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이었는데 당시 팀원 3명이 각자 벽을 보고 앉아있는 형태였고, 가운데 둥그런 테이블과 화이트 보드가 있었다.공동대표 2명과 나와 동갑인 여후배 1명이 팀 구성이었고 거기에 나까지 4명이, 앞으로 위젠을 만들어 가야 할 팀이었다. (현 홍기대대표 JOIN 이전)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맥주 한 잔을 하러 갔다.이전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이 영업팀이었던 까닭에, 매일같이 소주 회식은 기본이었는데환영 회식으로 가벼운 맥주라니 뭔가 외국 느낌이 물씬났.........다 ㅋㅋㅋㅋㅋ법인 카드는 따로 없었고 공용 비용은 대표 카드로, 식사는 각자의 카드로 해결했다.조인하자마자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좋은 소식들만은 아니었다1) 출시 일정이 7월이었는데, 외주 개발을 통해 맡기다보니 지연되어 8월로 예상됨2) 실제로 공동 대표 2명이 투자한 금액은 이미 상당금액 개발/디자인비로 소진함3) 서비스 출시 때 시작할 3개의 캠페인은 지인 위주로 정해졌으나 그 이후 캠페인이 잡혀있지 않은 상황4) 팀원들이 서로 친구이고 후배라 너무나 편하게 대한다는 점 (장점인 줄 알았는데 단점이었음) +여기에서 뭐부터 부딪히며 배웠다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잘못한 것들이 정말 많았다.- 현재 재무상황과 각자 투자한 금액 등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돈을 넣었다- 주주간계약서에는 베스팅도 안 걸려있었다- 돈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돈을 많이 썼다 (고학력 디자이너 2명 고용 / 비싼 가구 구매 / 비싼 외주 개발)- 선후배와 친구끼리 창업했더니 진지한 토론보다 쉽게 싸움이 일어남- 런칭 외 향후 계획 없음말하자면 총체적 난국이랄까...................차차 다루게 되겠지만 우선 이 포스팅에서는 공동창업에 대해 배운 것들을 정리해보고 싶다친구와의 창업에 대하여일하는 관계로 만나 친해지는 건 괜찮다. 하지만 친한 관계로 만나 일하면서도 친구처럼 대해버리면, 때로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때 대책이 없는 경우가 생긴다.선후배가 만나니 후배가 내는 의견은 '미숙한 의견'으로 묵살되기 일쑤.친구끼리 만나니 결정 권한이 없이 한 없이 싸우다가 관계가 틀어지기 일쑤.당연히 주변에 유능한 친구들이 있으면 무조건 끌어와야겠지만,최대한 일할 때는 성숙하게 서로를 대하고 결정체계는 명확하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이후 나올 이야기이지만 미리 말하자면,이제는 기대대표님과 개인적으로도 정말 친하고, 대표님은 나보다 5살이 많은 오빠이지만대표님이 처음 조인했을 때부터 존칭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했고, 아직도 서로 존칭을 쓴다.호칭이나 존칭 여부가 토론에 있어 은근히 (많이) 중요하다.나이나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프로페셔널하게 일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사전에 꼭 방지하자.창업팀에 조인하게 된다면나는 멋모르고 학벌만 보고 조인했는데 (이후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경험이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았겠다 싶다.안 그래도 맨땅에 헤딩인데, 다들 경험도 없을 뿐더러 경영학과조차 나뿐이라 정말 힘들었다 (...)또한 조인하는 당시의 상황 공유을 분명하고 투명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어야 했다.나는 당시 분명한 상황 공유를 받지 못했었고, 팀에 합류하기 이전에도 그랬다면 이후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이후에도 한동안 회사 사정에 대한 공유가 불투명했다.주주간계약서를 제대로 쓰자가장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다.스타트업 업계에서 베스팅, 베스팅 하는데, 솔직히 우리 다같이 굳건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당장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굳이 몇 년 베스팅 걸어가며 지분을 나눠야 하나?답은: 나눠야 한다. 무조건 나눠야 한다아무것도 모르고 베스팅 조건이 없는 동업계약서를 쓰는 바람에 런칭한 지 몇 달만에 팀을 나간 초기 창업자가 3년간 팀을 지킨 나보다 내내 훨씬 많은 지분을 갖고 있었다.만약 크게 성공이라도 했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도의상 양보해주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물론 그랬던 분도 있음.)그러니 공동창업이나 창업팀 조인을 고려하시는 분이라면 기존에 창업한 선배들을 찾아가서 이것저것 구체적으로 많이 물어보고 결정을 하셨으면 좋겠다.당시 나는 너무 마음이 급했고, 치기어렸다.#라이비오 #스타트업 #창업 #스타트업합류 #스타트업조인 #스타트업이직 #마인드셋 #경험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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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회사에 가기 싫은가

 어느 날, 저의 친구가 그러더군요.회사는 나의 노동력(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곳이다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였지요. 저는 사회적, 논리적으로는 친구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더 편하게 즐겁게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회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짧은 글로나마 두리뭉실하게 끄적여볼까 합니다. 저에게 회사란 "가정과 다른 의미에서 나의 또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곳"입니다. 저에게 있어 회사란 "나의 고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사용하여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그 친구 말이나 제말이나 비슷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그러나 저와 그 친구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회사에 들어간 반면에 그 친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들어갔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냥 돈을 벌러 가니까 월요일 회사 갈 생각에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지죠.(물론 이렇게 추운 날에는 그냥 가기 싫을 때도 있지만요) 그렇다면 만약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회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되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요. 하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회사를 다니는 편이 좋은 게, 돈도 주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재밌어서 회사를 다니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한 말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나는 왜 회사에 가고 싶은가? 나는 과연 회사를 이용하여 무엇을 달성하고 싶은가?로 치환이 가능하지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회사에 다니지 않더라도, 우주 한복판에 떨궈놓더라도, 하루하루 자신의 목표를 이루며 즐겁게 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웹서핑을 하다가 찾은 좋은 글귀가 있어 공유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아래의 글귀를 읽고 고귀한 목표를 달성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온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인간은 결국 자신이 목표로 한 것만을 달성한다. 그러니 비록 당장은 실패하더라도 더 고귀한 목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 중에서...더 생각해볼 문제-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또는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을 아직 찾지 못했어-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면, 나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이 직장에서 주는 수준의 월급이 필요해#비주얼캠프 #인사이트 #경험공유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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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

내가 7~8살이던 시절에는 부모님이 사주신 닌텐도 고전 게임기를 즐겼고(89년도) 마리오, 동키콩 등의 초기 버젼의 게임들을 밤 늦게까지 했다. 당시 교육 분위기가 그랬는지 부모님이 개방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부모님은 게임기(패밀리)와 수백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게임팩을 선물해주셨고 아마도 맞벌이로 저녁 늦게 귀가하셔서 그런지 나는 하고 싶은 만큼 게임을 했었다. 외동이라 형제 자매와 싸울 일도 없었고.당시에는 울트라맨 피규어나 후레시맨 합체로봇, 부메랑이라는 만화에서 나온 건전지 자동차, 레고가 유행했고 부모님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잘 사주셨다. 게임을 하거나 조립식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의성어를 내면서 놀기도 했다. 조립하는 것을 좋아해서 레고나 건담 피규어나 미니 자동차, 과자 상자에 들어있는 조악한 조립식 장난감을 열심히 조립해서 혼자 전쟁놀이를 했던 건데 어머니는 혼자 노는게 짠했다고 하신다.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연탄 보일러를 떼는 대방동 골목길 주택에 살았다. 겨울이면 아침마다 아버지가 보일러 연탄을 바꿔놓고 출근하셨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셨다. 나는 하교해서 어머니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배우거나 동네 쌀집, 통닭집, 미용실에 가서 놀거나, 친구네 집에서 페르시아의 왕자 같은 게임을 하거나 했다. 줄로 감아서 던져서 돌리는 팽이와 딱지를 가지고 놀거나 구슬 치기도 했다.초등학교 3학년 때 서초동으로 이사왔는데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따라왔지만 나름 좋은 학군을 따라 적당한 시기에 전학을 온 것이었고 어머니는 자식의 학군을 위해 한 동안 꽤 먼 길을 출퇴근 하시다가 학원을 정리하셨다. 그 무렵 집에 컴퓨터가 놓였다. 486 컴퓨터였을 것 같은데 워크래프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서이초등학교에 다녔는데 혼자 축구공이나 장난감 석궁, 부메랑 같은 것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이 있으면 같이 공을 차고 없으면 혼자 벽에 공을 차면서 놀다가 석양을 보면서 귀가하곤 했다. 평발이라서 오래 뛰면 발이 아팠는데 아파서 못 걸을 때까지 뛰어다녔다.슈퍼패미컴이라는 게임기를 가진 친구네 집이 또래들의 아지트가 되어 매일 그 집에서 모였다. 마리오카트나 드래곤볼 같은 콘솔 게임을 하다가 컴퓨터로 멀티플레이 탱크 게임을 하다가 삼국지를 하다가 대전 격투 게임을 지칠 때까지 했다. 초등학교 때의 여가는 축구와 게임이 전부였던 것 같다.초등학교 5~6학년 때는 방과후 특별활동으로 MS-DOS와 GW-BASIC 등의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94~95년도 인 것 같은데 당시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했다. MS가 뭔지도 DOS가 뭔지도 몰랐고 사실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웠던 기억은 없고 선생님 몰래 고인돌 같은 게임을 했다. MS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였고 DOS를 앞세워 당시 OS 시장에서 IBM과 애플 등과 전쟁을 치르던 중이라는 것도 20년 가까이 지나서 알았다.중학교 때는 오락실도 열심히 갔다. 철권과 킹오브파이터, 1942, 매탈슬러그를 했다. 가스렌지에 불꽃을 일으키는 장치를 오락실 기기 동전 넣는 곳에서 누르면 동전을 넣지 않아도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몰래 하다가 걸려서 혼난 적도 있다. 겁이 많아서 나쁜 짓은 별로 안 했던 것 같은데 게임은 너무 하고 싶어서 그랬나보다. 독서실 간다고 하고 오락실을 갔던 적도 많은데 한 번은 아버지에게 걸렸는데 크게 혼내지 않으셨던 게 기억이 난다.컴보이라는 휴대용 게임기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면서 다 깬 게임을 또 하고 또 하고 했다.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는게 아닐 때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만화책 대여방, 비디오 대여방에서 만화책과 비디오를 대여해서 보곤 했다. 당시에 3.5인치 디스크 5장~10장에 달하는 RPG게임이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유행했고 인터넷 시대 이전에 PC통신의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당시 유행하던 커뮤니티나 채팅 보다는 게임이 재미있어서 PC통신은 자료실 정도만 이용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무렵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진 친구네 집을 매일 들러서 늦게까지 놀다가 귀가하곤 했다. 철권이나 파이널판타지7을 플레이했다.중3 때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고 PC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PC방 분위기가 아니라 사무실 같은 곳에 컴퓨터만 많이 갖다놓은 느낌이었는데 시간 당 2천 원인가 3천 원인가 중학생에게 비싼 가격이어서 느긋하게 게임하지 못하고 한 두 시간 바짝 하고 헤어지곤 했다. 난 중 2~3때 항상 의기소침해 있었고 학교에 가기 싫었고 부모님과는 말도 잘 안 했었는데 어머니는 그 때 속상했다고 하신다.고1 때는 써클 활동으로 '전산반'에 가입했는데 3차에 걸친 면접과 10:1에 달하는 경쟁율이었다. 100명 정도가 지원을 해서 10명 정도를 뽑았다. 실력을 본다기 보다는 이 써클에 얼마나 들어오고 싶은지 열정을 보여야 가입을 할 수 있다는 게 전통이었는데 지금도 전산반 선후배 동기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그런 전략이 먹히긴 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축구나 게임 말고는 뭔가 열심히 했던 것이 없던 것 같은데 이 써클은 일단 가입부터 빡세고 선배들이 무서워서 열심히 활동을 하게 됐다.방과후에 매일 남아서 축제나 체육대회 준비를 하거나 프로그래밍, 3D 모델링, 에니메이션 툴 등을 배웠고 선배들을 만나면 복도가 울리도록 크게 인사를 해야 했다. 나는 그게 싫지가 않았는데 어느 정도의 규율과, 축제라는 목표와, 프로그래밍/그래픽 툴 공부라는 성장과, 매일 모이고 크게 인사를 하면서 느끼는 소속감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반 친구들보다도 써클 친구들과 동고동락을 하게 되다보니 더 친하게 지냈다.나는 MAX로 3D 에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아주 어설픈 실력이었겠지만 내가 혼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뿌듯했었다. 데스크탑 컴퓨터를 부품별로 사서 직접 조립했었고 친구네 집 컴퓨터가 고장났다고 하면 출장 수리를 해주고 짜장면을 얻어먹기도 했다. PC용 건반 게임인 비트매니아가 유행했고 오락실에서 펌프나 이지투디제이 같은 게임을 잘하는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2학년 방학 때는 학교 전산실을 쓸 수 있었는데 전산반 친구들과 거의 매일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친목을 다졌다.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어서 원래 반에서 10~15등 하던 등수가 3학년 부터는 전교 2~3등까지 올랐다. 그 시기에 메가스터디의 인터넷 강의가 생겼는데 학원에 가지 않고 인터넷 강의를 2배속으로 들으면서 공부했고 나에게 잘 맞았다. 공부를 한참 하던 시기에 반에서 나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뭔가 이 상황을 정리하지 않으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한 번 주먹다짐으로 결판을 내는 것이었다.중학교 때 자존감이 낮기도 하고 외소하고 겁도 많았던 시기에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이 있었고 고등학교 와서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성적이 오르면서 자존감이 높아져 있었는데 이 히스토리를 알고 있고 아니꼽게 보던 친구가 비아냥 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고 한 동안 참고 피하다가 어느 날 내가 날을 잡아서 시비를 걸고 치고 받았다. 내가 겁이 많은 성격인 건 여전했고 싸움을 해봤던 사람도 아니었지만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나는 그 시기를 내 삶에서 용기를 내어 뭔가를 깬 최초의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자연스러운 상태라면 내가 절대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을 행하기로 선택을 했고, 그 결과 그 친구는 뒷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내가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화가 나서 싸운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해결책을 실행했다. 부연하자면 내가 그 친구를 때려서 겁을 주거나 한 건 아니고 덩치가 나보다 컸기 때문에 내가 많이 맞았는데, 나에 대해 '건드리면 성가시다' 정도로만 인지시켜도 충분했다. 고2 담임선생님은 서울 안에 대학을 못 갈것이라고 했는데 내신과 수능이 엄청 올라서 연세대 공대에 02학번으로 입학했다.자존감이 올라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 1~2학년 때 굉장히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동아리 활동을 했고 수백권의 책을 읽었고 연애를 했고 여러 공모전에 도전해 수상도 했다. 대학 때는 공강 때마다 당구 대신 레인보우식스라는 FPS를 친구들과 자주 했고 클래식 기타 동아리 활동도 했다. 동아리 연주회나 여름 MT에 가고 조인트 동문회를 하고, 주량 모르고 선배가 주는 술을 받아 마시다가 필름이 끊기는 등 성인이 되어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최초로 경험했다. 아직도 생각나는 당시의 경험들은 내가 그래도 풍성한 대학생활을 했구나 하고 안도하게 해준다.2학년을 마치고(2004년) 아버지가 하시던 휴대폰 대리점에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내가 어깨 수술을 받아 거동도 불편해서 휴학을 하고 대리점에 앉아 책을 많이 읽었다. 대리점 컴퓨터가 전산 업무 빼고는 할 수 없었고 손님이 뜸한 지점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엄청 빌려와서 하루 종일 읽었다. 줄을 칠 수 없으니 컴퓨터에 책 내용을 요약 타이핑하면서 읽었는데 그 때 내용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실력이 늘었던 것 같다.복학하지 않고 그 해 겨울에 병역 특례 회사에 입사해서 22살에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계속 개발을 했고 외주 개발도 하고 스타트업들의 개발팀장이나 CTO를 맡으면서도 복학을 안 하다가 2010년에 복학해서 2012년에야 졸업했는데 항상 일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은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 잠깐 씩 가서 발표를 하거나 프로젝트 제출을 해서 딱 졸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학점을 받았다.집에서 학비 지원을 받기 어렵기도 했고 일을 하는데 졸업장이 얼마나 의미 있을까 싶어 복학을 안 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장학금과 내가 번 돈으로 학비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결혼을 한다면 고졸 보다는 대졸이어야 허락을 받기 쉬울 거라는 생각에 졸업을 했다. 이제 회사 생활은 그만하고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13년에 인썸니아 개인사업자를 냈다. 정부지원사업 제출 마감 전날인데 급하게 사업자를 내야 했고, 그 고민을 했던 시간이 새벽 4시였기 때문에 꽤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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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 꾸준히 하는 법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와 같은 통번역 기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기술이 발전하면 외국어가 더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어는 일상생활에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출장과 해외여행이 점차 늘고, 길에서 마주치는 외국인도 많아졌다.업무에서도 영어자료를 쓸 일이 점점 늘어난다. 영어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만큼 기대는 높아졌다. 번역기가 나오면 천국일 줄만 알았는데, 번역기 덕에 외려 부담감이 더 늘어가는 느낌이다. 기기에 의존하든 스스로의 능력에 기대든, 어쨋든 영어는 점점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나는 중학교때부터 영어를 끊임없이 배워왔다. 고등학교까지 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고, 대학에서는 취직을 위해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에 뒤쳐지지 않고, 더 나은 정보를 얻기 위해 영어를 읽는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는 울렁울렁 거린다.나도 영어 잘하고 싶다..직장에 들어와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학원도 다녀보고, 영어 신문도 보고 영어 잡지도 봤지만 결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작할 때는 그 의지가 제법 호기로웠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단어는 꽤나 무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어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 타의든 자의든 영어를 해야만 더 많은 기회에 노출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마주친 현실과 꿈쩍않고 낮은 의지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영어를 꾸준히 공부할 수 있을까 나란 놈에게 맞는 영어공부법을 찾기 위해 지난 실패들을 한번 돌아봤다. 학원은 공부하는 것보다 가는 게 힘들었다. 직장 동료와 술자리도 가져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는 일정속에서, 학원갈 시간이 살아남을 틈은 없었다. 영어 신문과 잡지는 솔직히 어려웠다. 트럼프나 시진핑의 대화는 그렇게 까지 관심이 가진 않았다. 내 친구도 이야기도 아닌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부와 멀어졌다. 하지만 영어는 꾸준히 공부해야 했다.경제학과 세상에 대해 공부하기에 참 좋은 잡지지만, 어렵다인터넷을 뒤지다 마지못해 재미있는 영어공부법이라 하는 미드보기를 뒤늦게 시작했다. 남들은 10년전에 이미 경험했던 그 미드보기다. 나이 서른에 뒤늦게 24시도 보고, 프리즌 브레이커도 봤다. 영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글 자막을 틀어놓고 매일을 킬킬거렸다. 영어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영어가 느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하루에 1-2시간씩 영어발음을 꾸준히 들었다. 당연히 크게 효과는 없었다. 두달 가량을 거의 매일 미드를 봤으니 못해도 50시간은 공부했을 텐데, 영어 말하기는 제자리였다.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나왔던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어" 라는 문장을 나는 두달후에도 여전히 "he is still our there" 로 표현했다. (이 표현도 틀린건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계속 나왔던 표현은 The criminal is still at large 라는 표현이었다) 대통령 케빈스페이시와 영부인 로빈라이트의 영어발음은 정말 좋다 ⓒ Netflix Original House of Cards재미로 미드보기의 효과없음을 여실히 느끼고 나는 그날부터 영어자막을 틀어놨다. 그제서야 영어공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조금 받을 수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 중요한 표현 (중요한 표현 같다는 느낌이 있다!) 은 뭐라고 한건지 다시한번 돌려도 보고, 이해가 안되면 이해가 되는 장면으로 되돌려 보기도 했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고 처음으로 작심삼일의 엄벌을 피해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yay!하지만 어디 완벽한 공부법이란게 있을까. 영어자막 미드보기는 영어 듣기랑 빠른 독해에 큰 도움이 됐지만, 영어로 말하기에는 별반 차이를 주지 못했다. 외국 바이어와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는 데에는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두달 전부터는 미드에서 나오는 표현들을 하루에 두세개씩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한문장을 적기도 하고, 간혹 느낌이 충만한 날에는 10문장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10문장을 쓴 다음날은 어쩐지 한문장도 쓰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한달이 지난 시점부터는 하루에 3문장을 꾸준히 쓰고 있다. 부담이 되면 또다시 작심삼일의 엄벌에 처해질 것을 알기에, 지금은 욕심을 더 내지 않고 딱 하루 3문장만 쓰고 있다.노트에 계속 적으면 복습에도 도움이 된다그럼 이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3문장 쓰기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무엇이 달라졌을까? 혹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면 정신을 바로 차려야 한다. 애초에 기대가 너무 크면 안된다. 고작 하루 5분의 시간을 투자했을 뿐이다. 하지만 5분의 시간을 투자한 것 치고는 대단한 변화가 있었으니, 1. 우선 생활영어 표현이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 똑같은 표현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바이어를 만나면 취미가뭐냐고 물을 때 이제는 "What's your hobby?" 대신 "what do you do for fun?" 을 쓴다. (우리도 시간날 때 뭐하냐고 묻지 취미가 뭔지 묻지를 않는다!) 2. 자연스러운 표현을 쓴다는 자신감을 얻으니, 외국인과의 대화를 더 많이 시도하게 됐다. 초면인 사람을 만나면 뭐라고 말할지 몇번을 미리 연습했고, 영어 실력때문에 ice-braking 을 포기했었던 나지만, 지금은 나름 몇마디를 할 수 있다. 자연스레 영어가 늘어가는 재미도 느꼈다. 새로 배운 표현을 외국인이 바로 알아들었을 때의 그 쾌감은 정말 이루말할 수가 없다. 3. 끝으로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드디어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영어 실력을 늘려야하고, 정해진 공부법은 맞지 않아 꾸준히 할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쩌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을 해결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고, 그 성과도 매일매일의 업무에서 확인하고 있다.하루 3문장 영어쓰기는 이제 고작 2달이 지났다. 문득 내가 이 습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느순간 포기하면 어떠랴. 새로운 방법을 다시 찾으면 된다. 우선은 지금의 공부법을 할 수 있는 한 유지해보려고 한다. 당장은 미드를 보고 있지만, 나중에는 그동안 실패했던 영어 신문과 영어 잡지도 똑같은 방법으로 공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6개월에 되는 시점에 다시한번 글을 써보겠다. 부디 그때까지 꾸준히 이 습관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끝으로, '파파고와 구글 번역기가 더 발전해서 영어능력이 정말 필요없어지면 어쩌지' 라는 쓸데 없는 걱정도 해본다. (가진자의 걱정이 이런거구나 싶다)by 아직도 영어가 고픈 30대 직장인챌린저스, 확실한 목표달성 꾸준한 습관형성 앱www.chlng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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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차별을 줄이는

거대한 사회문제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우리에게는 "차별"이라는 키워드가 항상 등장한다.금수저, 흑수저 프레임부터 세대 갈등, 난민, 젠더 이슈.우리는 "차별"에 민감하다.개인적으로 차별은 "있음"의 문제와 "극복"의 문제, 두 가지로 접근해야한다고 본다.차별의 본질적 유무는 구조적인 차원에서 해결이 가능하다.하지만 존재하는 차별을 개인적은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오늘은 차별의 "극복"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아동은 생후 6개월간 부모 특히 어머니와의 안정적인 애착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그 이후 필요한 다양한 자극은 놀이를 통해서 접하게 된다.감각 탐색이 중요한 3세, 풍부한 언어 자극이 필요한 4세, 사회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5세, 그리고 신체 활동이 활발해지고 신체 조작 능력이 크게 발달하는 6세,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발달 과정을 거치는 7세와, 경쟁과 협업을 통해 사회성이 크게 발달하는 8세.각 연령에 아동에게 필요한 그 요소 요소들은, 놀이를 통해서 채워질 수 있다.놀이는 기본적으로 탐색과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아동에게 있어서 놀이의 경험은 삶의 기술을 배우는 기회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기르는 기회이다.조금 비틀어서 보자면 이렇다.충분히 놀지 못한 친구들 - 예컨데 놀 기회가 없었다던가, 또는 가짜 놀이만 경험해본 -은 삶의 기술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야할 때에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안전하게 배워야할 실패와 성공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비롯되는 도전의식과 문제 해결력, 그리고 회복 탄력에 대해 배울 기회를 잃었다.또는 놀이를 통한 사회적 경험과그 경험에서 비롯되는 공감력, 이타심과 건강한 경쟁심에 대해 배울 기회를 잃었다.나아가서 놀이를 통해 알게되는 자기이해 경험과그 경험에서 비롯되는 자존감 형성, 감정 이해,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해 배울 기회를 잃었다.현재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더라도, 앞으로도 꾸준히 배워갈 힘이 없는 자는 그 반대편에 있는 자를 이기기 어려운 세상이다.삶에 대한 긍정과 동기 그리고 튼튼한 마음 없이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기도 하다.아이들을 못 놀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즐거움 또는 건강만을 뺏는 것이 아니다.그들로부터 삶을 살아갈 힘을 뺏는 것이다. 다시 조금 비틀어 보면 이러하다.우리는 함께 어울려 노는 기회를 통해 너무나도 적은 비용으로 차별을 줄일 수 있다.놀이하며 자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효과적으로 차별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차별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충분히 놀아본 아이들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더 큰 어려움도 극복해낼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데 능하며 자신을 쓰임새 있다고 믿는다.이런 능력은 어린이에게 놀이를 뺏어 놓고 후에 어른이 되어 갖게 하고자 하여 훨씬 더 큰 비용을 들여도 불가능할지 모른다.어린이에게 놀이를 통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힘을 주자.그리고 그 후에 어려움은 그들이 해쳐나가도록 기다려주자.그들이 성인이 되어 큰 벽을 만나더라도, 이겨낼 힘을 주자. 차별은 간단하게 없어지지 않는다.또는 그들에게 어울림의 힘으로 함께 차별을 없앨 동기를 주자. 차별은 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사라지지 않기에.우리가 너무 벌어져버려서 매꿈에 너무 큰 노력을 지지 않아도 될 때, 그 때부터 문제를 해결해보면 어떨까?다 고만고만한, 부들부들 말랑말랑한 어린이들에게차별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끊임 없이 발생할 큰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가르치자.놀이터에서!p.s. 보육과 교육의 기회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평생 학습 시대에서 또는 새로운 지성과의 만남을 앞둔 시대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배우는 기술과 배움의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배우는 기술과 배움의 태도를 놀이를 통해 익히 배운 이들에게는 지식이 알아서 그 가치를 할 터이다.아, 진짜 끝.할 말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하나 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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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협업툴이 도움이 되나요?

안녕하세요 협업툴 플로우입니다.저희는 2020년 플로우 고객사를 대상으로 '재택근무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긴급 재택근무 시행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는 이 시점에 재택근무시 협업툴이 업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과 현재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진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설문조사 결과를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본 설문조사는 총 '321개 기업' 520명이 참여하였습니다.재택근무 시행 여부! YES라면 업무 효율은?Q. 재택근무 시행 여부전체 321개 기업중 재택근무 시행 기업은 141개로 '44%'를 차지했습니다.Q. 재택근무 업무 효율성재택근무를 시행중인 이들에게 업무 효율성에 대한 질문 결과는 반반으로 나누었습니다. '업무 효율이 낮아졌다는 답변 비율50%', '평소와 동일하게 유지되거나 오히려 상승했다는 답변이 50%'의 결과가 나왔고 대면 업무가 익숙한 한국 기업들은 대체로 재택근무 시 생산성 저하를 우려하지만, 긍정적인 답변의 비율이 높게 차지한 셈입니다.재택근무 업무 효율, 직급별 체감이 다르다.Q. 재택근무 업무 효율성(대표 vs 중간관리자 vs 실무자)매우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재택근무 업무 효율성 평가는 직책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직책별로 재택근무 업무 효율성이 유지됐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한 비중을 보면, 대표 및 임원(35%),중간관리자(45%),실무자(64%)다. 직책이 높을수록 재택근무는 업무 효율성이 저하된다고 평가됩니다.재택근무중 업무 효율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뭘까?Q. 재택근무중 업무에 방해가 되는 요인은?✅ 1위 낮은업무 집중도✅ 2위 내부직원간 소통✅ 3위 협력사 협업✅ 4위 느린 업무 속도✅ 5위 회사에서만 가능한 업무위와 같은 순서로 답변은 직책과 관계없이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개인의 주거 공간(집)에서는 자율성이 생기고 여러 상황에 따라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고 업무 리듬이 깨지기 쉽기 때문에 '낮은 업무 집중도'는 누구나 염려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됩니다.재택근무 업무 효율, 높이기 위한 방법은?Q. 재택근무중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1위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36%)✅ 2위 업무 보고와 피드백 (26%)✅ 3위 업무 일정 엄수 (18%)✅ 4위 정확한 근태관리 (10%)✅ 5위 보안이슈 (8%)재택근무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의견이 36%로 가장 많았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한 공간에서 업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업무 시간에는 가급적 자리를 비우지 않고 빠르게 공유하고 회신을 해야 원활한 업무 소통이 된다는 생각으로 분석 됩니다.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위해 협업툴 도움이 되는가?Q. 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위해 협업툴 도움이 되는가?협업툴이 도움된다는 의견은 73%로 압도적이었습다. 협업툴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무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한 공간에서 얼굴은 맞대지 않아도 어디든지 사무실이 될 수 있고 전 세계 누구와도 협업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기업들에게 협업툴에 대한 의존도는 굉장히 높은 것 같습니다.재택근무의 유용한 협업툴 플로우의 기능은?Q. 재택근무의 유용한 협업툴 플로우의 기능은?(중복 선택 가능)✅ 1위 PC, 모바일 연동✅ 2위 업무 프로세스✅ 3위 할 일 TO DO 체크리스트✅ 4위 파일 관리✅ 5위 업무용 메신저✅ 6위 일정 관리플로우 고객사는 위와 같은 순서로 재택근무의 유용한 플로우를 기능을 뽑았습니다. 노트북과 모바일만 있으면 출근까지 10초. 플로우로 로그인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PC / 모바일 연동' 기능이 1위로 선정 된 것으로 분석됩니다.고객들이 가장 유용하다고 선택한 플로우 기능과 그 이유는?지금까지 플로우 고객사들의 재택근무 실태조사에 대한 결과를 알아봤습니다. 본 설문 결과로 참고하여 현재 다른 기업들의 재택근무 현황에 대해 파악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셨길 바라며 코로나 19 확산으로 정상적인 근무환경에 제약이 있겠지만 기업들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플로우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협업툴 플로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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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에 대한 자세와 신념 Weekly Replay(May 6, 2016)

시작한 이 일이 잘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외부에서 답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주변에선 ”뭐 돈 안되는 일을 하고 있냐 “ 라며 이해 받지 못한다.성공하고 나면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난 늘 믿어왔다”고 말을 바꿔 얘기하겠지만.잘될 거라는 보험을 들어놓고 할 수 있는 것이 사업이라면 누군들 못할까.좋은 아이템, 새로운 아이디어로 왠지 대박 날 것 같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들뜬 맘으로 사업들을 시작한다.  자신 없는 데,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사업을 시작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 아이디어를 누가 실천에 빨리 옮기는가가 중요하다.그 외에도 순간의 판단, 선택, 결정, 지치지 않는 어떤 질긴 힘이 세금계산서처럼 따라다닌다.양치질 할 때도, 옷을 입으며 거울을 볼 때도, 머릿속은 생각의 생각으로 꽉 차있게 된다. 직장생활 중에는 없던 시간들이다.그 힘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고 내게 물을 까봐 겁났다.멋진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그 힘이 힘 있으려면 그 모든 가치가 나보다는 세상에 있을 때 란 것을 알게 되었다.의지가 사명이 되고무엇을 위해 달려간다가 그냥 가야만한다로 바뀌면서내 안에도 멋진 대답이 생겨났다.오너는 세상의 흐름을 타야 하고흔들리지 않고 하려는 일을 위해 그냥 가야 한다.언제까지? 될 때까지이다 그때까지 가면 된다 ㅎ힘든 모습을 보일 수 없을 때가 있다. 속이 얼굴에 빤히 나타나는 나에게는 제일 힘든 일이다.속은 놀라고 떨리고 무섭고 불안해도 얼굴은 문제없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있다.그러나 한가지 귀한 것은늘 열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왜 그 고생이냐고? 이유는 열정 때문이다. 10여년 전 우리가 모바일로 물건을 결제하고 음식점을 예약할 줄 상상 못했던 것처럼 다가오는 2020년, 또 그 후 무엇이 트렌드가 될 것인가. 나는 프리랜서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평생직장 개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정직원이냐 비정규직이냐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직장개념이 생겨나고 인력 시장에 많은 변화가 올 것이다.   벤처의 성공 요인으로 사람, 아이템, 자본, 타이밍을 꼽는다.두 가지는 충족이 되었고 남은 두 개는 진행형이다. 아무리 인생 미래 계획이 있고 사업목표와 비전이 있다한들 나는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 최고의 사람들과 일하기를 바란다.#넷뱅 #창업 #창업가 #창업자 #마인드셋 #신념 #목표 #비전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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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분야별 업무소개 - 카메라

수많은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을 사각형의 프레임안에 고스란히 담아 내어 시각적으로 재구성하여 표현해내는 업무를 맡고 있는 카메라맨들이 소속되어 있는 부서가 영상제작국입니다. 사실적인 것(다큐멘터리, 중계)과 허구적인 것(드라마, 쇼)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영상적 시니피앙(記表)을 구현하기 위하여 방송 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KBS의 카메라맨들은 21세기의 방송계 화두인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영상 문법을 정립하며 올바른 프로그램 영상 제작의 길을 제시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인간은 그 사람이 쓰는 언어에 의해 표현되어 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언어학에서 배웠듯이 인간의 언어인지체계는 의미화 과정에 다다르기 위하여 시니피에(記意) 이전에 시니피앙의 출발점을 거쳐야 하듯이 영상 문법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이미지의 의미화 과정이 수행됨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카메라맨들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의 의미를 TV를 통하여 받아들일 때 이와 같이 명확한 영상적 시니피앙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방송계 영상 제작의 초석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영상제작국의 업무는 프로그램 특성에 따라 다분화 되어 있습니다. 크게는 여러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영상 제작을 하는 다인작업과 한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영상 제작을 하는 일인 작업으로 나눌 수 있고, 작게는 프로그램의 장르 특성에 따라 드라마 제작, 연예 오락ㆍ교양물 제작, 스포츠ㆍ보도 등의 중계 제작, 야외 촬영 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에서는 영상 하나하나에 감성과 이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많은 시도들을 하고 있으며, 연예 오락ㆍ교양물 제작에서는 무엇보다도 안정적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영상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계 제작에서는 스포츠, 문화 예술 공연, 보도 등 현장성과 시의성이 있는 영상제작에 참여하며 다양한 메가 이벤트들을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야외 촬영 시에는 프로그램 제작 기획 의도에 맞게 드라마, 시사 교양, 오락, 다큐멘터리 촬영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엄격한 영상 미학을 추구하는 가운데 시청자들에게 친근하면서도 미적 감동을 주는 영상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특수 장비의 사용도 빈번한데, 항공 촬영, 수중 촬영, 스테디캄 촬영 등 시대를 선도하는 다양한 영상 제작 기술은 한국의 방송 영상 제작 역사를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영상제작국에서는 그 업무의 다양성 만큼이나 부서원들의 학부 전공도 다양합니다.즉, 카메라맨으로의 문호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인문학적 감성과 과학적 이성, 그리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도전 정신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도전하고자 하는 미래가 있고, 성취하고자 하는 희망이 있다면 그 꿈은 이 곳에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CREATIO EX NIHILO(무에서의 창조)를 이루기 바랍니다.#한국방송공사 #KBS #KBS공채 #직무정보 #직무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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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도 인정한 중국어 공부법

2008년, 12월보다도 춥다는 2월. 나는 중국에서도 가장 춥다는 하얼빈행 비행기를 탔다.군대를 제대하고 1년이 되지 않아 다시 집을 떠나는 길이기도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무엇에 홀렸는지 중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하는 광풍이 불었을 때도 나는 꿋꿋이 독일어를 배웠다. 그런 내가 태어나 한번도 배운적 없는 언어를 무작정 잘하고싶다고 생각했으니, 그야말로 중국어에 꽂혔다고 해야겠다. 어쨋든 그 생각이 들고 얼마 지나니 않아 나는 중국어를 계절학기 수업으로 등록하고, 학원 새벽반도 끊었다. 그렇게 8개월간 중국어 기초를 공부하고 태어나 처음 중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들였다.중국어 기초는 오프라인 학원에서 중국어 빨리 배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학원 수업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겠다. 중국어 공부를 처음 할 때는 학원 새벽반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언어는 쓰는만큼 는다. 오프라인 학원에 가면 선생님들이 문장을 큰 소리로 읽게 만든다. 그리고 꼭 돌아가면서 한 문장씩 읽게한다. 책에 있는 예제를 가지고 대화 연습도 한다. 한 예제는 한두명의 학생과 연습하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간다. 학생이 많으면 그만큼 소리내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겠다고 하면 가능한 사람이 적은 수업에 들어가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새벽반은 등록인원도 적지만 결석인원도 많다. 내가 결석인원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새벽반을 강하게 추천한다. 요새는 인터넷 강의가 많아졌는데, 막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오프라인 학원에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은 이동시간도 아끼고 비용도 줄일 수 있지만, 언어를 소리내 발음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할 수 있지만 의욕이 사라지면 곧 발음연습은 물론 강의도 소홀히 하게 된다. 게다가 중국어 발음은 체계가 복잡해서 기초를 잘 닦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다보면 발음을 교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된다. 인터넷 강의는 발음 기초를 잘 닦아놓은 후에 듣는 것을 추천한다. 중국어를 쓸 수 밖에 없는 환경 ①중국 어학연수 단기간 안에 중국어 실력을 크게 늘리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24시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중국은 교환학생이 아닌 어학연수로 갔다. 교환학생이라면 내가 다니는 학교와 제휴를 맺은 몇 개의 학교 내에서 선택을 하면 되지만, 어학연수는 그렇지 않다. 지역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 나는 발음이 좋고 물가가 저렴한 곳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중국은 나라의 크기만큼 지역 방언이 많고, 표준어와 지역어 사이의 유사성도 낮다. 무작정 물가 싼 곳을 선택했다가는 얼마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만 열심히 공부하다 올 공산도 크다. 중국어의 표준어(普通话)가 현재의 베이징 지역에서 쓰는 말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나는 남쪽보다는 북부 지방을 선택했다. 그 중에서도 하얼빈은 표준어를 굴려 발음하는 얼화(儿化)가 적어 소위 발음이 깨끗한 곳이라했다. 자국 방송인들도 발음공부를 하러 온다기에 큰 고민없이 지역을 선정할 수 있었다. 사실 하얼빈은 베이징, 상해 보다 발달정도가 한참 뒤쳐진 도시다. 중국의 발전된 모습과 변화속도를 경험하기 위한 여행에 하얼빈을 추천할 일은 없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이 우선 목적이라면 한국인과 놀거리 많은 베이징, 상해보다는 하얼빈이 더 적합할 것이다.하얼빈은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에 있다중국어를 쓸 수 밖에 없는 환경 ②기숙사는 1인실로 중국에 가면서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당시 HSK 는 초중고급으로 나뉘었는데, 9-11급에 해당하는 고급중국어 자격을 따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만큼 하나의 원칙도 있었다.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적게하는 것이었다. 막상 해외에 가면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밖에 나가면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입 한번 열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의지를 불사르며 입을 떼도 돌아오는 대답은 매우 차갑다.    什么?(뭐라고?)그러다보니 자연히 마음놓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인들을 찾게된다.'오늘 이런일이 있었다, 중국어 배우기 정말 어렵지 않냐'와 같이 마음 속에 응어리진 일들을 이야기하다보면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일이 점차 늘어난다. 한국어 쓰는만큼 중국어는 준다. 중국어 발음이 좋지 않고, 할 수 있는 표현이 적으면 그만큼 중국인과의 대화는 더 어렵다. 결국 언어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중국에서 한국 친구들과 술먹은 기억을 잔뜩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이 적지 않다. 한국인과 어울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숙사 1인실을 쓰는 것이다. 대개는 돈을 아끼려고 2인실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인과 같은 방을 쓰면 냉정하게 말해 중국어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현저히 낮아진다. 1인실을 당연히 더 비싸지만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 중국의 대학은 전국 각지에서 오는 학생들을 모두 수용해야 하기에 기숙사 규모가 크고 건물도 많다. 한국인들 많은 깨끗한 신식의 기숙사보다는 조금 허름해도 중국인이나 해외 유학생이 많은 곳을 선택하면 2인실 비용으로 1인실을 쓸 수 있다. 그만큼 중국어로 말할 기회가 늘어난다. 살다가 한국인이 없어서 정 힘들면 기숙사 옮길 수 있다. 평생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아니니 처음에 한번 도전해볼만하다. 중국인들은 농구를 사랑한다. 아침일찍 농구공 하나 들고 농구장에 가면 중국친구를 손쉽게 사귈 수 있다.수업에 가면 한국인이 절반 이상이다. 나의 경우엔 반 정원 30명 중 25명 가량이 한국인이었다. 수업에서 자리를 잡고 짝을 찾는 것은 첫날이 중요하다. 혼자온 외국인 유학생이 있다면 그와 짝을 해라. 그러면 적어도 중국어랑 영어 둘 중에 하나는 는다.중국어 발음 익히기나는 언어에서 정확한 발음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중국어는 발음 체계가 복잡한 만큼 더 많은 시간을 발음공부에 쏟아야한다. 중국어 발음은 어렵다. 吃(chi),是(shi),指(zhi) 와 같은 발음은 한국어에는 쓰이지 않는다. 입을 가로로 최대한 벌리고, 혀를 말아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수업에서 한두번 연습한다고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발음을 뱉어낼 수는 없다. 수업시간에 마음먹고 읽어도 쉽지 않은 음들이다. 중국어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결국 중국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발음공부에는 소홀하다. 내가 뱉어낸 이야기들을 한번에 상대가 이해하고 대화를 하게 될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한번 말하는 데 재미를 느끼면 조금씩 더 어려운 단어를 일상생활에 쓰는 연습을 하게 된다. 처음 한두번은 什么 가 대답으로 돌아오겠지만, 몇번 연습을 거듭하면 말하자마자 바로 알아듣는 고마운 중국인들도 만나게 될것이다. 여하튼 그 재미의 시작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을 갖는 것이다. 나는 중국에 있는 1년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15분, 자기전 15분은 꼭 발음연습을 했다. 발음 연습하는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병음으로 기본발음들을 적어서 아침 저녁으로 큰 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중국인 친구와 대화할 때, 그가 한번에 이해하지 못했던 내 발음을 기억해뒀다가 발음 연습장에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가령 친구에게 "吃完了去取吧 (밥먹고 가지러 갈게)" 라는 문장을 이야기했는데 못알아 들었다면 그 문장을 적어두는 것이다 (chi 발음과 두개의 qu 가 연이어 나오는 것이 포인트다). 그런 단어와 문장들을 모아서 아침, 저녁으로 연습을 하면 중국어로 말하는 것에 한층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발음 연습을 한다면 아침에 일어나자 하는 것과 잠자리 들기 전 시간을 추천한다. 깨어난 시점부터 잠을 잠을 자는 동안까지 24시간 내내 중국어를 생각해 계속 중국어를 쓰고 있는 느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권설음(빨간박스) 발음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얼빈에서 쓰던 발음표가 아닌 새로운 발음표다)이제는 영어보다 편한 중국어사실 나의 공부법이 다른 사람들 대비해서 정말 획기적인 방법인 것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한 단순한 방법에 속한다. 하지만 결과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중국에 도착하여 8개월 째에 고급중국어 시험에 통과했고, 많은 중국인 친구들로부터 자기가 아는 한국인중 가장 중국어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곤했다. 덕분에 외국인을 만날때 갑자기 중국어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영어와 중국어 모두 그냥 내 뇌에서는 외국어로 존재하나보다.끝으로 중국어 배우는 데에 많이들 활용하는 것이 중국어 과외받기(辅导,fudao)다. 중국어 수준별로 중국어 과외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그 동안은 우선 한국인들과 조금 떨어져 아침저녁으로 중국어 발음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어떨까!?한국에 계신 분들에게는 다시한번 학원 새벽반을 추천한다.by 외국어 공부를 사랑하는 30대 직장인챌린저스 - 확실한 목표달성 꾸준한 습관형성 앱www.chlngers.com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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